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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유묵과 남긴 글

송 죽 2019. 4. 28. 01:22

안중근 의사 유묵

안중근(安重根:1879~1910)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 역에서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이등방문)를 사살한 뒤,


여순감옥(旅順監獄)에서 1910년 2월 14일 사형 선고를 받고 

3월 26일 순국할 때까지 옥중에서 쓴 200여 점의 묵서 중 일부로 

1972년 8월 16일 보물 569호로 지정되었다.




'단지동맹 취지문'

'단지동맹'은 안중근 의사가 1909년 3월 초 항일투사 11명과 함께 

동의단지회()를 결성하고 왼손 넷째 손가락(무명지) 첫 관절을 잘라, 

혈서로 '(대한독립)'이라 쓰며, 독립운동에의 헌신을 다짐한 일.


안중근 의사는 자신 외에 단지동맹 가담자가 11명이 더 있다는 말만 하고, 

끝까지 동지들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아 

지금까지도 명확한 단지동맹의 명단이 확인된 바는 없다. 




단지동맹은 1909년 2월 7일 안중근을 비롯한 12명의 동지들이 

일본의 지배가 국내외 적으로 확산되어 가고 있던 와중에

조극을 구하기 위하여 결성된 결사대 이다.


동의단지회의 「취지서」에 따르면, 

단지동맹은 조선의 이천만 동포가 일심 단결하여 생사를 무릅쓰고 

투쟁을 전개하여야 독립을 달성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결성되었다.




이토 히로부미의 15가지 죄악


1. 1905년에 일본 병정을 시켜 대한 황후 폐하를 시해 한 일, 

2. 1905년 병력으로써 한국 황제 폐하를 위협하고 5조약을 맺은 일,

3. 1907년 또다시 병력으로 위협하고  대한 황제 폐하를 폐위 시킨 일,

4. 한국 안에 있는 산림, 광산, 철도, 어업 등 농상공업 등을 모조리 강탈한 일,

5. 소위 제일은행권을 강제로 발행하여 전국 재정을 고갈 시킨 일,

6. 국채 X천 3백만 원을 강제로 한국에 부담 시킨 일, 

7. 한국 학교의 서책들을 불태우고 내 외국  신문을 못보게 한 일,

8. 국권을 회복하려는 한국 의사들과 그의 가족들 까지 10여만 명을 죽인 일, 

9. 한국 청년들의 외국 유학을 금지 시킨 일, 

10. 5적 7적 및 일진회와 짜고 한국인이 일본인 보호를 받고자 한다고 한 일,

11. 1909년 다시 5조약을 강제로 맺은 일, 

12. 한국이 일본에 속방되고 싶어하는 것처럼 선전한 일.

13. 2천만 생령의 곡성이 진동한데 한국은 태평 하다고 명치 황제를 속인 일.

14. 동양 평화를 깨뜨려 몇 억만 인종으로 하여금 장차 멸망을 못 면하게 한 일.

15. 그리고 또 1867년 6월 일본 명치 황제의 부친을 죽인 일.


안 의사께서 1909년 11월 6일 일본 관헌에게 낸 것




의거의 이유

내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것은 한국독립전쟁의 한 부분이요.

또 내가 일본 법정에 서게 된 것은 전쟁에서 패배한 포로가 된 때문이다.

나는 개인자격으로 서 이 일을 행한 것이 아니요.

대한민국 의군 참모중장의 자경으로

조국의 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해서 행한 것이니

만국공병에 의하여 처리 하도록 하라.


-안의사께서 일본 법정에서 외친 것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 러시아 등을 활동하면서

모진 어려움 속에 남긴 글


"남아유지출양외 사불입모 난처신 망순동포경류혈 막작세간무의신"

"사나이 뜻을ㅇ 품고 나라 밖으로 나갔다가

큰일을 못 이루니 몸 두기 어려워라.

바라건대 동포들아 죽기를 맹세하고

세상에 의리 없는 귀신은 되지들 마오!!!"


안의사가 독립군으로 전쟁에서 승리도 하곤 했지만

그 작은 전쟁으로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항상 쫒기는 어려움이 얼마나 컸으면

"사나이 뜻을 품고 나라 밖으로 나갔다가 큰일을 못 이루니 몸을 두기 어려워라" 하고 

고백하고 있다.

또 힘을 합쳐 숨겨주고 도와주어야 할 동포들의 도움도 못 받는 심정을

"바라건데 동포들아 죽기를 맹세하고 세상에 의리 없는 귀신은 되지를 마오" 라고

실토하고 있다.

-안의사께서 조국을 떠나면서 남긴 글




조국을 떠나면서 남긴 글

"사나이 큰 뜻을 품고 타국으로 떠나가니

살아서 성공 못하면 죽어서 돌아오지 않으리.

유골을 구태여 조국의 무덤 옆에 묻으랴

세상엔 가는 곳마다 청산이 무진한데"


"대한에서 태어난 대한의 남아로서 대한독립을 위해 조국을 떠나 타국으로 가니

성공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

국권회복의 뜻을 이루지 못한 내 유골을 어떻게 선조의 무덤에 묻을 수 있으랴

타국에도 가는 곳마다 청산이 얼마든지 많으데"

-안의사께서 조국을 떠나면서 남긴 글.









"인내"

참고 견딘다는 안의사 평생의 좌우명

보물 제569-18호


1910년 3월에 쓴 것으로

글씨 좌측에 "경술 3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서"라고 쓴 뒤

손바닥으로 장인(掌印: 손바닥으로 찍은 도장)을 찍었다.




"제일강산"

삼천리 금소강산 한반도에

대한 사랑 조국애를 나타낸 글

보물 제569-14호




"황금백만량불여일교자"

황금 백만냥도 자식 하나 가르침만 못하다.




"자애보"

스스로를 보배처럼 사랑하라.




"천당지복 영원지락"

천당의 복은 영원한 즐거움이다.




"세한연후지송백지부조"

날이 추운 뒤에야 소나무, 측백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

보물 제569-10호




"인무원여 난성대업"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못하면 큰일을 이루기 어렵다.

보물 제569-8호




"견리사의 견위수명"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

보물 제569-6호




"박학어문 약지이례"

글공부를 널리 하고 예법으로 몸 단속하라.

보물 제569-13호




"위국 헌신 군인 본분"

나라위해 몸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

보물 제569-23호




"일일불독서구중생형극"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보물 제569-2호




"국가안위 노심초사"

국가와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운다.

보물 제569-22호












동포에게 고함

"내가 한국 독립을 회복하고 동양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3년 동안 해외에서 풍찬노숙 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노니, 우리들 2천만 형제자매는 각자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에 힘쓰고 실업을 진흥하며 나의 끼친 뜻을 이어 

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자 여한이 없겠노라"


-안의사께 순국 직전에 한 유언




최후의 유언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르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 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 된 의무를 다하여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안의사께서 순국 직전에 정근 공근 두 아우와 홍신부에게 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