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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공원(부천시 중동)

송 죽 2019. 4. 27. 17:08

 

집 근처에 있으면서 그동안은 부천 중동공원으로 알고 지내던 곳인데

최근에 '안중근 공원'으로 바뀐 걸 알고 

카메라 둘러메고 찾아가 봤다.

 

공원 안에는 안중근 공원을 만들게 된 동상을 비롯해

보물 제 569호로 지정된 여순 감옥에서 쓴 유묵과 

그의 발자취를 새겨 놓은 여러개의 비석들이 세워져 있다.

 

 

 

 

지하철 7호선 부천시청역 3번 출구로 나와 

인도를 따라 50~60m 직진하면 

송내대로와 길주로가 교차하는 사거리 코너

부천 종합터미널 소풍 맞은편에 안중근 공원이 있다.

 

 

 

 

공원 입구에서 바라 본 전경

 

 

 

 

사각형의 공원을 대각선으로 커다란 보행로가 있고

보행로 좌우로 여러가지 유묵과 안 의사의 행적을 기록한 비가 세워져 있다.

저 끝에 안 의사의 동상이 있으며 기념 조형물이 같이 있다.

 

 

 

 

안중근 공원 안내도

 

 

 

 

 

차일피일 미루다 겨울이 다 지나고 고목에 꽃이 만발한다.

 

 

 

 

 

 

 

 

 

 

 

 

 

 

'동의 단지회 취지문'

이번 편에서는 공원의 개괄적인 사진을 올리고

다음 편에선 안중근 의사 유묵과 생에 남긴 글들을 올리려 한다. 

 

 

 

 

무궁화가 심어진 코너에 세워진 팻말 글이 작아 아래 적어 본다.

 

"나라꽃 '무궁화' 역사"

 

세계 각국마다 자기나라를 상징하는 국기와 국화를 가지고 있다.우리나라도 태극기와 나라꽃(무궁화)을 가지고 있다.나라에서 법으로 정하거나 국민의 뜻에 따라 제정된 곳도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의 장미가 왕실의 꽃이었으나 국민이 좋아해서 나라꽃으로 정했고스코틀랜드 엉겅퀴 가시 꽃도 전쟁 중 적군이 엉겅퀴에 찔려 적군을 발견함으로써승리를 했기에 나라꽃으로 국민이 정한 것이다.
대한민국 무궁화 꽃도 조선시대에는 과거 문무급제 때 무궁화 꽃을 사모에 꽂아 임금에게 가서 합격증을 받았다.이렇게 위대한 무궁화였다.
고려시대 때는 이규보 시 근화(槿化)로 부터 유래되어 무궁화로 불렀다고 기록되고 있다.
나라꽃(무궁화)은 일제강정기 동안 우리민족 말살정책과 함께 다시 등장 되었다.광복과 더불어 독립정부가 들어서면서 대한민국 표상과 상징으로 태극기와 무궁화가 등장 되었다.
1949년 10월 15일 대통령 휘장과 입법, 사법, 행정 3부의 표상이 되었고,군의 계급장도 무궁화로 등장 되었으며 1950년 1월 25일 태극기 깃봉도 무궁화로 제정되어 명실 공히 국가 혼불로 등장 되었다.
위대한 역사 속에 등장된 나라꽃 무궁화는 대한민국 최고 훈장이요.대통령 당선 시에 훈장과 무궁화 휘장이 수여 됐을 때 대통령 직무가 시작되며국민을 보살피는 대통령으로 권한이 부여된다.
위대한 나라꽃(무궁화)정신이 바로 안중근 의사의 위대한 정신이요.대한민국과 함께 영원토록 민족의 혼불을 세계에 밝힐 것이다.
(사) 대한무궁화중앙회   명승희 총재 글

 

 

 

 

안내도에 음수전으로 되어 있는데

아직 이른 계절이라 그런지 물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기립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한을 달래고 아픔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자 

시민들의 모금으로 기립비를 건립하였다고 한다.

 

 

 

 

기립비의 뒷면

 

 

 

 

가운데 위안부 피해자의 한이 

고산 최동호 님의 시 로 새겨져 있다.

 

 

 

 

 

 

 

 

 

한 컷의 만화에서 안중근의사의 이토히로 부미 저격과 

자식의 안위를 걱정하는 엄마의 모습까지 그려져 있다.

 

 

 

꽃을 갈갈이 꺽고 진실을 외면하는 사무라이 복장의 군인을 

호미를 든 소녀가 응징하고 있다.

 

 

 

 

할머니가 소원하는 '그 날이' 세상 떠나기 전에 오기를... 

 

 

 

 

우린 지금 어디로 가고 있냐고 묻는 

끌려갔던 어린 소녀들의 끝나지 않은 발걸음...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안중근 의사가 옥중에 있을 당시 

그에게 보낸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를 만화로 표현한 작품

 

 

 

 

 

 

 

 

 

안중근 의사 동상과 함께 그의 업적을 나타낸 기념 조형물이 넓게 자리하고 

조형물에는 여러 부조들이 있고 설명이 새겨져 있다.

 

 

 

 

 

 

 

 

혈서태극기(血書太極旗). 

손가락을 단지(斷指)하여 태극기에 피로 건곤감리(乾坤坎) 4쾌 자리에 

대한독립(大韓獨立)이라 써서 혈서태극기를 만들었다.

 

태극 모양이 이상하다 생각이 들어 검색해 보니

 

고종은 1883년 3월 6일 왕명으로 ‘태극·4괘 도안’의 

‘태극기’(太極旗)를 국기(國旗)로 제정·공포하였으나, 

 

국기 제작 방법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은 탓에 

이후 다양한 형태의 국기가 사용되어 오다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1942년 6월 29일 

국기 제작법을 일치시키기 위하여 

「국기 통일 양식」(國旗統一樣式)을 제정·공포하였으며,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태극기의 제작법을 통일할 필요성이 커짐에 따라, 

 

정부는 1949년 1월 「국기 시정위원회」(國旗是正委員會)를 구성하여 

그 해 10월 15일에 「국기 제작법 고시」를 확정·발표하였다.

 

1909년 동의단지회를 결성하며 혈서로 먄들어진 태극기이니 

이때는 태극기 제작법이 통일되지 않았을 때로

태극 문양이 지금과 반대로 되었던 것 같다.

 

 

 

 

이곳 부천에 안중근 공원이 만들어 지고 

안중근 동상을 세우게된 사연이다. 

 

 

 

 

안중근 기념 조형물

 

 

 

 

 

 

 

 

 

안중근 의사 동상

 

 

 

 

 

 

 

 

 

 

 

 

 

 

기념 조형물 가운데에는 넷째 손가락이 절단된 

안 의사의 왼 손바닥이 터널처럼 새겨져 있다. 

 

 

 

 

이토히로 부미가 하얼빈 역에 내린다는 접보를 접하고

그를 저격하는 장면의 커다란 부조가 있고,

 

안 의사가 의거전 지은 '장부가'와 

이토히로 부미를 저격해야 하는 15가지 죄악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안중근 의사 연보

황해도 해주에서 탄생부터 이등박문을 사살하고 

1910년 3월 26일 사형이 집행될때 까지의 내용이 기록도어 있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 앞면 

앞 뒤로 6점이 새겨져 있다.

 

- 국가안위노심초사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운다.

 

-황금백만이불여일교자

황금 백만냥도 자식하나 가르침만 못하다.

 

- 견리사의견위수명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던져라.

 

 

 

 

안중근 의사의 유묵 뒷면 

 

- 치악의악식자불족여의 (보물 제569-4호)

궂은옷 궂은밤을 부끄러워하는 자는 더불어 의논할 수 없다.

 

-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힌다.

 

- 백일막허도 청춘부재래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마라 청춘은 다시 오지 않는다.

 

 

 

 

안중근의사 의거의 역사적 의의

인심결합론

 

 

 

 

 

 

 

 

 

옥중에 남긴 글, 

안중근 의사의 법정투쟁,

위대한 평화주의자와 동양평화론

 

 

 

 

 

 

 

 

 

최후의 유언, 

시모시자(그 어머니에 그 아들)

 

 

 

안중근 의사의 순국

 

 

 

 

안 의사 동상 뒷모습

 

 

 

 

 

 

 

 

 

 

 

 

 

 

 

 

 

 

 

부천시와 하얼빈시의 자매결연 체결 10주년 기념비

 

안중근 의사 동상 맞은편에 하얼빈 동산이 자리하고 있다.

 

 

 

 

기념비

대한민국 부천시와 중국 하얼빈시는

1995년 11월 28일 자매결연을ㅇ 체결하여 10주년이 되는 해에

이를 기념하고 양 시의 우정이 영원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비를 세우다.

2005년 8월 19일

부천시장 홍건표

 

 

 

 

 

 

 

 

 

동상 뒷편 공원 끝에서 바라 본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