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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포구의 '장도포대지'

송 죽 2018. 11. 29. 01:53

소래포구의 소래철교 옆에 있는 적의 포격을 방어하고 

아군의 사격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세운 

인천 소래포구 인근에 있던 포대로 ‘댕구산 포대’라고도 한다. 


 소래포그는 40여년 전부터 즐겨찾던 곳인데

이곳에 포대지가 있는줄은 이번에야 알게 됐다.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9호(2001.4.2) 로서

소래철교 바로 옆에 붙어있다.


조선시대인 1877년(고종 16년) 일본측이 서해안을 측량하면서 개항지를 물색하자 

인천을 개항 후보지로 요구할 것을 대비하여 


고종이 어영대장 신정희와 강화유수 이경하로 하여금 설치토록 하여

인천과 부평 연안에 화도진을 설치하고 포대를 만들 때 함께 만들어진 것으로서 

1879년 7월에 준공되었다고 한다.


현재 장도포대지는 소래철교 옆의 40m높이의 구릉에 위치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화도진도' 원본에서 

이곳에 포좌 3기가 설치됐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는데,


2개는 바다 쪽을 향하고 있고 1개는 동남쪽을 향하고 있어 

각각 외곽과 내곽 수비가 목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2개의 포좌는 잘 만들어져 설치돼 있는데 

더 이상의 설명이 없으니 한기는 복원이 안된건지 찾을 수 없었다.




포대지 외측(해안쪽)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더 이상 출입을 할 수 없어 이렇게 밖에 촬영이 안된다.


이곳에 사세한 설명이 없어 이곳저곳을 검색해 내용을 기록했는데

소래역사관에 좀더 자세한 설치 배경이 있어 옮겨 본다.


장도포대의 설치 배경은 개화기 서구열강의 침입과 인천 개항에 대비한 

인천, 부평연안 방비의 강화조치이다.

장도포대지는 조선 말기에 외국선박들이 

인천연안인 소래 수로로 침입하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한 포대로 

화도진과 연희진 등 2개의 진과 모도, 북성, 제물, 호구포대와 함께 축조되었으며

화도진 관할 하에 있었다.


장도포대는 소래포구를 가로지르는 소래철교 옆에 40m 높이의 구릉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 이 구릉은 모양이 노루처럼 생겼다하여 '장도(獐島)'노루목 또는 노렴이라 불렸는데,

이 후 포대가 설치된 이후 쯤부터 '대완구'에서 댕구산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현재는 남동구청에서 포대지를 복원하였고,

그 과정에서 1999년 '호도진도'의 원본 확인 결과 

이곳에 포좌 3기가 설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장도포대지 내측에서 바라본 모습

좌측이 소래철교, 우측 초록색이 수인선 철로




포가 향하고 있는 해안가 갯벌풍경
























장도포대지에서 바라본 소래철교의 교각




소래철교에서 '장도포대지'를 바라본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