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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루브르박물관...2

송 죽 2011. 9. 4. 14:36

 

외젠 들라크르와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년 부르봉 왕가를 무너뜨린 프랑스 7월 혁명의 모습을 그린것으로

3일에 걸친 열띤 혁명 중 2틀째인 7월 28일의 파리 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답니다.

 

시민군을 이끄는 여인은 자유의 여신으로 공상적인 인물이라는데

이제는 프랑스 공화국의 표상이 되어버린 작품이지요.

  

 

 

1819년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

 

1816년 7월 2일 400여명을 태운 프랑스 군함 메두사호가 아프리카 세네갈로 항해중 침몰하여

 선장을 비롯한 고급선원 250명은 구명보트를 타고 떠났고

나머지 하급 선원과 승객 150명은 뗏목을 만들어 표류하다가 13일 만에 15명이 구조되었다.

 

이를 둘러싼 갖가지 풍문이 떠돌자 제리코는 생존자들을 찾아다니며 증언을 듣고

뗏목의 모형을 만들고 시체 안치소에 시체의 상태를 연구하는등 그 토대를 바탕으로 작품을 구상하여 탄생하였다.

 

생종을 위해 인육을 먹었던 사건으로 당시 대단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답니다.

그림 좌측 하단에 상반신만 남은 사람이 있습니다. 

 

 

 

좌측 하단의 그림인데 상반신만 남은 시체와 한 아버지가 죽은 자식을 무릎에 끌어안고 애도하는 장면입니다.

 

이 뗏목을 구명 보트에 매달아 끌고 가기로 했지만 선장은 뗏목을 잘라내고 도망갔으며

13일 동안 물도 식량도 없이 정처없이 바다를 떠돌며 구조를 기다리던 뗏목은

죽음과 질병.폭동과 광기, 기아와 탈수, 식인의 생지옥이 되었답니다.

 

구조가 되어 살아남은 사람들 중에도 두명만 제정신이었고

 나머지는 다 미쳐버렸다는 실제 사건입니다.

 

 

 

데오도르 제리코의 '돌격하는 샤쇠르' (349x266)

연기 자욱한 전장에서 앞발을 번쩍든 말에 올라탄 한 장교의 모습

 

 

 

'사르다니팔루스의 죽음'

 

방탕과 사치와 폭정을 일삼던 왕이

적군에 점령당하기 전 주변에 있는 모든것을 제거하고

본인도 목숨을 끊는다는 비장한 장면입니다. 

 

 

 

모사를 하고있는 이 할아버지는 빠렛트를 보나 얼굴의 주름으로 보아

꽤 긴 연륜이 있어보여 학생은 아닌듯 한데 주변의 번잡함에도

어찌나 진지하게 작품에 열중이신지 카메라를 들이 대기가 미안하기도 했지요. 

 

 

 

데오도르 제리코 작 '전쟁터를 떠나는 부상당한 기갑병'(358x294)

 

 

 

나폴레옹의 워털루 전투

 

 

 

앙투안 장 그로 作 '나폴리 왕 조아킴 뮈라의 기마상' (343x280)

 

 

 

웅장한 회화 전시실의 천장

 

 

 

이제 천장을 보는게 습관이 되었습니다.

 

 

 

눈썹이 없고 미소로 유명한 레오나드로 다 빈치의 '모나리자' 초상화 (77x53)

 

'모나'는 이탈리아어로 유부녀에 대한 경칭이며,

'리자'는 피렌체 부호인 상인 프란테스코델 조콘다의 부인 이름이랍니다.

 

 피렌체의 부호 프란테스코델 조콘다를 위하여 그 부인을 그린 초상화인거죠.

 

 

 

모나리자를 직접 본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이곳 전시실에 와선 

유명세 만큼이나 많은 인파에 놀라고, 생각보다 작은(53X77) 작품에 또 놀라고,

도난과 파손의 위험 때문인 듯 2중 방탄유리로 보호되고 있으며 바리케이트 까지 쳐 놓고, 

그 앞에는 경비원까지 상주 합니다. 


눈앞에 명화를 보고 있으면서도 보고 싶었던 명작을 

핸드폰, 사진기를 통해 바라보려는 사람들을 주목한다. 

 

저 인파를 뚫고 들어가야 사진을 찍을 수 있을 텐데...

이곳은 소매치기 위험 1 순위 지역으로 경계를 늦추면 안된다.

 

 

 

초상화에 눈섭이 없는것은 당시 넓은 이마가 미인의 전형으로 여겨져

여성들 사이에 눈썹을 밀어버리는게 유행이었기 때문이라는 설.

미완성 작품이라는 설. 눈썹이 그려져 있었으나 복원 과정에서 지워졌다는 설등이 분분합니다.

 

 천의 얼굴을 가진 신비의 여인 모나리자는 보는 각도에 따라 묘하게 다른 분위기를 낸다는데...

윤곽선을 뚜렷이 그리지 않고 빛과 그늘로 흐릿하게 선을 그리는 기법에 의하여

모나리자는 천의 얼굴을 가진 신비의 여인이 됐답니다.

 

 

 

조금은 통통한 체형에 오른쪽으로 살짝 돌아 앉아

오른손을 올려놓고 있는 편안한 자세로

온화한 미소를 띄우며 바라보고 있습니다.

 

 

 

붐비는 인파를 뚫고 어렵게 들어가니 뒤에선 계속 밀고 들어오는데 

작품 감상은 엄두도 못내고 최대한 많이 카메라 샷터를 누르고 빠져나오기 바빴습니다. 

 

 

 

벽에는 무수한 명화들이 걸려있다.

박물관 전시실의 규모와 분위기 그리고 그안에 전시된 무수한 작품들로

실제 그작품을 감상할 시간과 여유가 없다.

 

 

 

'사랑의 화살을 든 큐핏'

 

 

 

파울로 베로네세의 '가나의 혼인잔치'

 

예수가 첫번째 기적을 행한 물을 포도주로 만든 기적이 일어나는 가나의 혼인잔치를 주제로 그린 작품

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장 큰 작품(677X994)으로 사람들이 너무 많아 결정적인 장면이 가려졌네요.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 수도사들의 식당에 걸린걸 나폴레옹 군대가 떼어 왔다.)

 베네치아 '산 조르조 마조래 성당' http://blog.daum.net/sc2248/17948154

 

 

 

좌측 (대형작품으로 많은 인파가 몰려 있어 나누어 찍어봤습니다.)

성모와 예수님 얼굴에는 광채가 나는군요.

  서양사람들도 인증샷을 좋아 하더군요.

 저 핑크스카프 서양아줌마는 그림앞에 서서 한참을 떠날줄 모릅니다.

 

 

 

우측 그림

앞에 물항아리를 들어 황금잔에 옴기는 장면이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예수님이 행한 첫번째 기적을 일으키는 모습입니다.

 

 

 

이 작품은 모나리자가 있던 방에 있는 꽤 큰 그림인데

이런 작품들이 무수히 많이 있지만 

모든 시선이 모나리자에 있어 외면받고 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