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019년은 불기 2563년으로 5월 12일이 부처님 오신 날이다.
이날을 맞이하기 위해 봉은사는 벌써
부처님 맞을 준비에 한참 분주한 모습이 여기저기 보였다.
지난 4월 5일 코엑스에 갔다가 봉은사에 들러
스마트폰으로 몇장의 사진을 찍어 온게 영 맘에 안들어
다시 카메라를 들고 찾아가 화풀이 하듯 찍다보니 사진이 너무 많다.
봉은사 입구인 일주문인 진여문 앞에는 공사로 어수선 해서
주차장 쪽에 포커스를 맞워 전경을 찍는다고 셧터를 눌렀다.
우측에 진여문과 법왕루 그리고 대웅전이 있어 사진엔 나오지 않았으며
산능선에 경기고등학교가 보인다.
주차장과 보행로엔 잔 자갈을 갈아 놓아
심하게 부는 꽃샘 바람에 먼지가 심하게 날리고
자동차라도 지날 때엔 먼지 바람에 눈을 뜰 수 없게 더욱 심하다.
일주문(진여문) 문앞에 공원조성 공사로 매우 어수선하며
칸막이는 해 놓았지만 공사 자재가 밖으로 많이 나와있다.
높은 칸막이로 진여문 정면의 사진은 반쪽만 찍고 포기...!
'진여문'(사천왕문)
사찰에 드어서는 첫 번째 문을 일주문(一柱門)이라고 하는데
봉은사에서는 '진여문'이라고 한다.
진여(眞如)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뜻한다.
그러므로 진여문에 들어선다는 것은
곧 부처님의 세상에 들어간다는 의미가 있다.
봉은사 진여문은 '선정릉지'의 '봉은사사적' 에 의하면
창건 당시부터 있었던 건물로 기록되어 있다.
'선정릉지' 는 조선 제9대 왕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를 모신 선릉,
그리고 11대 왕 중종을 모신 정릉의 제향과
수호 및 운영에 관해 기록해 놓은 책이다.
현재 원본은 남아있지 않으며 일제강점기의
이왕직찬시실에서 원본을 보고 베낀 필사본이 남아 있다.
필사본은 1925년 이왕직 장관을 역임했던 민영기(閔泳綺)가 작성한 것이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봉릉사찰이자 선종 수사찰인 봉은사는
진여문, 천왕문, 해탈문이 순서대로 늘어선 위엄 있는 사찰이었다.
그 뒤의 기록은 알 수가 없고,
1939년 대화재 때 판전을 제외한
대웅전, 동서승당, 진여문, 만세루, 창고 등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다.
그 뒤 1941년 대웅전과 동서승당, 1942년 영산전, 북극전, 만세루, 천왕문 및
산문(山門)을 세운 것으로 기록되었다.
즉 이때 진여문과 해탈문을 복원하지 못하고
다른 사찰처럼 일주문을 세운 뒤
1939년 화마로 부터 피해를 입지 않은 사천왕을 모실
천왕문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그 뒤 영암스님과 밀운스님이 주지를 이어 맡으며
진여문의 복원을 발원하여
1982년 일주문 자리에 진여문을 세웠다.
건축 양식은 팔작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이지만
일반 건물에 비해 기둥의 간격과 높이 등에서 훨씬 크게 지어졌기 때문에
칸수에 비해 실제로는 규모가 큰 건물이다.
가운데 대문에는 각각 칼과 창을 든 신중상이 그려져 있으며
천장에는 비천상이 그려져 있다.
좌우에는 1998년 법왕루를 신축하면서 헐려진 천왕문에 있던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 160호인 봉은사 목조 사천왕 입상이 있다.
지붕 아래에 걸려 있는 현판은 앞에는 '수도산 수선종 봉은사'라고 하여
봉은사가 선종의 으뜸 사찰임을 나타내고 있다.
뒤에는 '진여문'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봉은사라는 현판은 한때 해인사로 출가한 뒤
만해 한용운스님과 '만당(卍堂)을 결성하여
독립운동을 하였던 서예가 청남(菁南) 오재봉(吳齋峯, 1908~1991년)이 쓰고,
진여문이란 현판은 봉은사 주지를 역임한 석주스님이 썼다.
옛 일부문은 1982년에 경기도 양평 사나사로 옮겨져
그 사찰의 일주문 역할을 하였다가
2000년대 중반에 사나사의 일부문 불사로 인해
봉은사의 옛 일주문은 완전히 해체도고 말았다.
앞에 현판은 '수도산 수선종 봉은사'라고 쓰여있어
봉은사가 선종의 으뜸 사찰임을 나타내고 있다.
용을 당겨 찍었더니 부시(罘罳)가 선명하게 나왔다.
봉은사의 건물에는 모두 부시가 설치되어 있었다.
부시(罘罳): 새가 앉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전각(殿閣)의 처마에 둘러치는 철망.
입구 좌측에 있는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 160호인
봉은사 목조 사천왕 입상
사천왕 제 3상(남방증창천 추정)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 160호
1746년
사천왕 제 4상(서방광목천 추정)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 160호
1746년
입구 우측에 있는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 160호인
봉은사 목조 사천왕 입상
사천왕 제 1상(북방다문천 추정)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 160호
1746년
사천왕 제 2상(동방지국천 추정)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 160호
1746년
6개의 대문에는 각각 칼과 창을 든 '신중상'이 그려져 있다.
비천상을 찾아 천장을 둘러보다가
위 그림이 비천상이 아닐까 싶어 찍은 사진인데...???
진여문의 천장(좌측)
진여문의 천장(우측)
뒤 편에는 '진여문'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법왕문으로 오르다 왼쪽에 작은 연못이 있고
연못 안에 넉넉한 인상의 석상이 있다.
공덕비
진여문을 들어서면 우측에 크고 작은 여러 가지 모양의 부도와 비석이 도열되어 있다.
부도는 모두 3개인데 팔각원당형 부도의 주인공은 누구인지 잘 알수 없고
석종형 부도는 1925년 대홍수 때 많은 사람을 구한 청호스님을 기리는 것이다.
또한 2013년에 건립한 허응당보우대사 봉은탑이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부도 쪽으로 탑비 2개가 나란히 서있는데
부도옆에 있는 것은 영암 대종사의 비이고
옆에 있는 탑비는 1932년에 세워진 봉은사 사적비이다.
그리고 부도 남쪽으로 모두 16개의 비가 서있는데 대부분 송덕비이다.
송덕비 중 앞에 최근에 세운듯한 비에는 공덕비로 써있다.
'부도'와 '탑비'
부도는 3개이고
주지 나청호대선사수해구제공덕비
1925년 대홍수때 많은 사람을 구한 청호스님을 기리는 공덕비
1925년 한강을 범람케 한 을축년 대홍수는
지금까지도 이따금씩 언급될 만큼 유례없이 엄청난 재난이었다고 하는데,
그때 봉은사의 주지로 있던 나청호(羅晴湖)스님은
절의 재물을 모두 풀어 한강물에 떠내려가는 사람들을
무려 708명이나 구해냈다고 한다.
당시 목숨을 건진 사람들이
스님의 공덕을 오래도록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
바로 이 수해구제공덕비이다.
2013년에 건립한 허응당 보우대사 봉은탑
봉은사는 신라 원성왕 10년(794년) 연회국사가 창건했으며,
숭유억불로 불교를 탄압하던 조선시대에는
불교의 명맥을 잇기 위해 애쓰신 보우스님의 원력으로
선종수사찰 봉은사는 불교중흥의 주춧돌이 되었다고 한다.
좌: 영암 대종사의 비, 우: 봉은사 사적비(史跡碑) 1932년 세움
영암 대종사의 비
법왕루로 오르는 언덕길 좌측에 담장과 위 불이문이 있다.
진리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뜻의 불이문은
사찰로 들어가는 마지막 문이다.
불이문에서 내다 본 풍경으로
'연지관세움보살상'과 '보우당' 그리고 '향적원'이 보인다.
법왕루 오르는 길에 담장
산사나무
산사나무 밑둥
산사나무 열매
법왕루에서 진여문을 바라 본 풍경
봉은사는 서울의 중심지인 강남구 삼성동에 자리잡은
1,200여년전 역사의 천년고찰이다.
진여문 넘어엔 아셈타워, 코엑스, 한국종합무역센터, 인터컨티넨탈 등
하늘을 찌를듯한 빌딩들이 숲을 이루고 있어 부조화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저 앞에 코엑스 자리인 승과평에서 스님을 선발하는 승과고시를 실시해
한국불교의 선맥을 이은 서산, 사명대사 등 걸출한 스승들이 배출되었다.
좌: 영암 대종사의 비,
허응당보우대사 봉은탑
허응당 보우대사 상에 대한 이력 사항이 기록된듯 한데
높이있어 읽을 길이 없다.
허응당 보우대사 상
보우대사는 혹독한 척불정책이 기승을 부리던 조선 명, 정종대 봉은사 주지로
꺼져가던 조선불교의 법맥을 수호하는데 큰 역할을 하며 불교 중흥을 이끌었으나,
유생들과 관리들의 집요한 상소와 배척으로 제주에 유배 중 순교했다.
보우대사 순교입적 448주년을 맞아
보우대사의 업적을 재조명하고 이를 기리기 위해
불기 2013년 일주문 옆에 동상을 건립했다.
팔각원당형의 부도로 주인공이 누구인지 잘 알 수 없다.
봉은사 사적비(史跡碑)
왕특나청호대선사수해구제공덕비
대홍수때 많은 사람을 구한 청호스님을 기리는 공덕비
‘남호대율사비’(南湖大律師碑)
남호 영기(南湖永奇, 1820~1872)스님은
판전의 화엄경판을 판각한 분이다.
1855년에 봉은사에 와서 『화엄경』(華嚴經) 판각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화엄경』은 80권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경전으로
불교에서는 대승경전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서적이라 한다.
경판을 봉안하기 위해 새로 지은 집에 안치된다.
그 건물이 바로 판전이고,
현판 글씨는 흔히 추사의 절필작이라고 말하는 그 작품이다.
진여문에서 법왕루 가는길
법왕루 뒷편에 대웅전이 있다.
진여문에서 속세를 바라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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