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제1호 '숭례문(崇禮門)'
조선왕조를 세운지 3년만인 1394년(태조 3)에
한양이 새 도읍으로 정해지고 여기에 새 도성이 건설되었다.
수도 전체를 방어 할 목적으로 도성 둘레 네 산에 성곽을 쌓았으며
성곽에는 동서남북에 각각 4개의 큰 문과 4개의 작은 문을 두어
도성 내외로 출입하기 편리하게 하였으며
정문인 남대문을 '숭례문(崇禮門)이라 이름지었다.
숭례문은 한양 도성 4대문의 하나로
사신을 마중하고 배웅하는 나라의 관문 구실을 하였는데
중국에 사신을 보내거나 군사를 출병시킬때
관료들이 숭례문 밖에서 전송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숭례문은 개성 남대문, 평양 보통문과 함께 우리나라 성문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며
현재 남아있는 성문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성문이다.
1396년(태조 5)에 시작하여 1398년(태조 7)에 완성되었는데
1448녀(세종 30), 1479년(성종 10), 1868년(고종 5) 등 여러 차례에 걸친 수리를 통해
잘 보존되어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 1호로 되정되었다.
서울 도성의 남쪽 정문이라서 일명 '남대문(南大門)'이라고도 불린다.
'숭례문' 현판
2008년 2월 10일 저녁 발생한 방화로
현판이 화염에 쌓여 땅바닥으로 곤두박질 하던
당시의 TV화면이 지금도 생생하다.
화재로 현판은 물론 2층이 불타 무너지는 등
대부분의 목조 누각은 석축만 남은채 소실되는 큰 피해를 입었으나
약 3년의 복구 공사를 거친뒤 2013년 5월 원형에 가깝게
복구되어 시민에 공개되고 있다.
지하철 1호선 4번 출구로 나와 약 200m 올라가면 숭례문 광장 입구에 도달한다.
예전엔 숭례문 양 옆으로 버스길에 전차길 까지 있어
서울역을 가던지 서울역에서 시내로 가려면 자연스럽게 지나치며 보게된다.
이렇게 지방에서 서울에 오면 한번은 꼭 보고
고향에 가면 가장 큰 자랑거리가 되던 그런 문이다.
남대문에 문지방이 있네 없네 다투다가
남대문 안 본 사람이 이긴다는 우수개 이야기도 있었으니까
산뜻하게 단청 한 문루의 지붕은 위 아래층이 모두 겹처마
수리가 끝나고 단청에 문제가 있다고 한 동안 시끄러웠는데....
욕심 같아선 저 위 문루로 올라가 상세히 살펴보고 싶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친지 얼마 안돼서인지 감시가 살벌하니 언감생심 꿈도 못꾸겠다.
'홍예문'(무지개 모양 문)
화강암으로 쌓아 만든 석축에 아치형 문을 내고 커다란 문짝이 있으나 문지방은 없다.
통금시간(2경~5경)에는 성문을 닫아 출입을 통제하였다.
성문을 여닫는 신호는 종이나 북을 쳐서 알렸는데
2경에 성문을 닫는 제도를 인정(人定), 5경에 성문을 여는 제도를 파루(罷漏)라 하였다.
홍예문을 들어서면 천장에 청용은 성밖 쪽에 황용은 성 안쪽에
두마리가 구름을 헤치며 승천하고 있다.
황용
청용
한국전쟁 당시 총탄과 포탄에 의해 훼손된 흔적들
성 안쪽에 들어오면 작은 광장이 있고
관광객은 도로에 막혀 더이상 갈 수 없어 되돌아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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