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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

송 죽 2013. 6. 4. 22:37

 

흥화문

경희궁의 정문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 19호) 이다.

 

서울에는 5대 궁궐이 있다. 경복궁, 덕수궁, 창덕궁, 창경궁 그리고 경희궁 이다.

지난 겨울 춥고 눈 쌓인날 고생하며 창덕궁을 둘러 보고  

경희궁은 따뜻한 날씨에 둘러 보겠다고 다짐 했는데 이제야 다녀왔습니다.

 

 

 

밑에 서궐도안을 보면 흥화문의 위치가 이곳이 아니고

동쪽 금천 옆에 있으며 동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제가 1932년 이토 히로부미를 위한 사당인 박문사(博文寺) 정문으로 사용하기 위해 떼어갔던 것을

서울시에서 1988년 경희궁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현재의 위치에 이전하여 복원하였다.

 

 

 

 

궁궐도을 보면 경희궁이 우측 홍화문에서 부터 좌측 태령전까지 무척 넓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는 붉은색안이 경희궁으로 좌측 숭정문 앞으로 흥화문이 있고 뒤로 숭정전, 자정전, 태령전만이 있다.

노란색 부분인 금천 에서 부터 집경당 까지는 서울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숭정전으로 들어가는 숭정문은 보수공사가 진행중이니 관람불가

 

 

 

경희궁은 광해군때 창건되어 조선 후기 동안 중요한 궁궐로 자리매김 하였으며

창건 당시에는 경덕궁이라 하였지만 영조 때 경희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창덕궁과 창경궁을 합쳐 동궐이라 부르는데 경희궁을 서궐이라고도 하였다.

 

 

 

숭정전

1618년(광해군 10)경에 건립된 경희궁의 정전(正殿)

 

 

 

숭정전

 

 

 

숭정전 앞마당엔 박석이 깔려있고 품계석과 어도가 깔끔히 정비되어 있습니다.

 

 

 

 

 

 

 

 

 

 

 

 

 

 

 

2단 월대로 답도와 어계 그리고 소맷돌

 

 

 

상월대 계단

 

 

 

하월대 계단의 소맷돌 서수

서수: 복되고 길한 일이 일어나는 징조로 나타나는 짐승

 

 

 

 

 

 

 

답도와 어계

 

 

 

드므

상월대 하월대 각각 2개씩 4개가 있다.

 

 

 

 

 

 

 

답도와 어계

 

 

 

숭정전의 문살

 

 

 

어좌

 

 

 

천장 중앙 천판에 두마리의 용이 장식되어 있다.

창덕궁 인정전에는 두마리 봉황이었다.

 

 

 

천판의 쌍용을 둘러싸고 있는 전장

 

 

 

 범례를 보고 숭정전 실내를 자세히 찍어야 겠다고 여러 방향에서 찍었습니다.

범례는 남쪽에서 바라본 그림이군요.

 

 

 

어좌

 

 

 

남쪽에서 찍은 좌측(서쪽)

 

 

 

남쪽에서 찍은 좌측(서쪽)

 

 

 

남쪽에서 찍은 어좌 동쪽

 

 

 

남쪽에서 찍은 어좌 동쪽

 

 

 

서쪽에서 동쪽을 보고 찍은 사진

 

 

 

북쪽 에서 남쪽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

 

 

 

북쪽(어좌) 에서 남쪽을 바라보고 찍은 우측 사진

 

 

 

북쪽(어좌) 에서 남쪽을 바라보고 찍은 좌측 사진

 

 

 

자정문

편전인 자정전으로 출입하는 문 (숭정전 뒷편에 있다.)

 

 

 

자정문으로 올라가는 게단

 

 

 

 

 

 

 

자정문과 계단

 

 

 

자정전

숭정전 바로 뒤에 있는 경희궁의 편전(便殿)으로 1620년(광해군 20)에 건립되었다.

편전으로 지어 졌지만 숙종이 승하했을 때에는 왕가의 관을 보관하는 빈전(殯殿)으로 사용되기도 하였고

고종의 어진(御眞)과 위패(位牌)를 봉안하기도 하였다.

일제에 의해 훼손된것을 서궐도안을 통해 태령전과 함께 복원하였다.

 

 

 

 

 

 

 

자정전 추녀 와 잡상

 

 

 

자정전 취두

 

 

 

 

 

 

 

 

 

 

 

자정전 천장

 

 

 

자정전

 

 

 

자정전 서측 바위

경희궁에 서암이라는 기이한 바위가 있다고 찍은 사진

그러나 서암이 아니라는걸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서암(瑞巖)

암천(巖泉)으로 불리는 바위 속의 샘이 있어 예로부터 경희궁의 명물이었다.

본래는 왕암(王巖)으로 불리었는데 그 이름으로 인하여

광해군이 이 지역에 경희궁을 지었다는 속설도 있다.

 

1708년(숙종 34)에 이름을 서암으로 고치고 숙종이 직접 瑞巖 두 글자를 크게 써서 새겨 두게 하였다.

그러나 현재 서암을 새겨두었던 사방석은 전해지지 않는다. 

 

 

 

서암의 샘

 

 

 

서암에서 내려다 본 모습

좌측에 승정전과 자정전이 보고 우측은 태령전의 절반이 보인다.

 

 

 

자정전 측면

 

 

 

 

 

 

 

 

 

 

 

태령전

 

 

 

 

 

 

 

조선의 21대 임금 영조 어진(초상화)

어진은 왕의 초상화로 고대부터 꾸준히 그려져 왔는데

조선시대 이전 왕의 어진은 당대에 그려진 것은 남아 있지 않다는군요.

  

어진들을 궁궐에 모셔 보관 하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서울 수복 후

부산 광복동 관세청으로 피난 갔다가 옆 집에 약품회사가 화재를 당하는 바람에

모두 소실되고 겨우 남은것이 영조 어진과 타다 남은 철종과 문조(익종)의 어진이 전부압니다.

태조는 전주 경기전에 보관되어 화를 면했고 문조는 얼굴이 불타버려 지금은 외모를 알 수 없답니다.

 

그래서 조선시대 어진은 사진의 시대에 속하는 고종과 순종의 것을 제외하면

태조와 위의 영조 그리고 반쯤 불에탄 25대 철종의 것이 전부랍니다.

 

 

 

 조선왕실의 계보로 21대 확인 해 봅니다.

태, 정, 태. 세, 문, 단, 세

예, 성, 연. 중, 인, 명, 선

광, 인, 효, 현, 숙, 경, 영조

 

 

 

 

 

 

 

 

 

 

 

숭정전

 

 

 

숭정전

 

 

 

느티나무

경희궁과 함께 수백년은 족히 돼 보이는 것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금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