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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차이나타운 짜장면 박물관

송 죽 2013. 3. 21. 20:40

 

인천 차이나타운 내에 있는 '짜장면 박물관' 전경

옛 공화춘 건물을 인천 중구청에서 구입하고 보수하여 2012년 봄 짜장면 박물관으로 개관하였다.

 

오늘날 하루에 700만 그릇이 팔린다는 짜장면은

대중적인 국민음식이며 한국인이 가장 즐겨먹는 중국음식인데

개항기 인천항의 화교들을 통해 산동지방의 음식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개관의 역사가 짧아서 그런지 조금은 어설픈 면도 보이고

한편으론 작은 흔적들 까지 모아서 보여주려는 관계자의 노력도 엿볼 수 있었다.

 

그 예로 출입구에 걸려있는 세개의 간판은 박물관을 꾸미며 만든 모조품이고

너덜너덜 헤어진 진품은 실내에 전시되어 있다. 

 

인천 중구청은 이곳뿐 아니라 주변의 근대 개항기 건물들을 매입하여

 원형을 복원하고 유지하며 관광자원화 하여 활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1908년 무럽 건축된 건물로 중국 산동지방의 장인이 참여하여 지은 중정형(中庭型)의 중국식 건물이다.

외부는 벽돌로 마감하고 내부는 다양한 문양과 붉은색을 사용하여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처음엔 무역상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곳으로 이용되었다.

중화요리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부터는 음식점의 공간이 확대되어

대형 연회장을 갖춘 유명한 중국 음식점으로 1980년대 까지 그 명성을 날렸다.

 

 

 

1890년대를 전후하여 인천의 부둣가는 외국과의 무역이 한창이고

배에서 내리고 싣는 물건을 나르기 위해 수많은 짐꾼과 인력거꾼이 필요하였는데

대부분 산동 지방 출신의 노동자인 쿨리였다.

 

이들은 별다른 재료 없이 춘장에 수타면을 비벼 즉석에서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고향의 메뉴인 짜장면을 먹은데서 보급이 시작되었다.

 

 

 

공화춘 건물(짜장면 박물관)은 등록문화재 제246호로 지정되어 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공화춘'은 신해혁명 후 '공화국 원년의 봄' 을 맞는다는 의미로

1912년에 문을 열고 1983년 폐업을 한 중국음식점인데

짜장면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예전 공화춘의 내부 사진

 

 

 

1922년 '공화춘 주식증서'

 

 

 

1914년 '공화춘 주식증서'

 

 

 

공화춘 식대 계산서(1961년, 단기 4294년)

 

 

 

공화춘 회계장부

 

 

 

경성방송국(JODK) 1930년대 보급형 라디오

 

 

 

화교들이 외국에 정착을 시작할 때면 세자루의 칼이 유일한 그들의 생계 수단아었다.

 

음식점 주방에서 사용하는 식칼인 육도(肉刀)와 채도(采刀)

양복점에서 사용하는 가위인 전도(剪刀)

이발소에서 사용하는 면도칼인 체도(剃刀) 등이 그것이다.

화교들은 음식점, 양복점, 이발소에 주로 종사하였음을 말해 준다.

 

 

 

1960년대 공화춘 부채

선풍기의 보급이 안됐던 시절 동네에 크다는 가게에서는

겨울엔 달력과 여름엔 부채에 상호를 인쇄하여 

지역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며 홍보를 했었다.

그때 제작된 부채인듯 하다. 

 

 

 

공화춘 시절 사용하던 유물인 '문과 의자' 등이 한쪽 벽을 장식하고 있다. 

 

 

 

 

 

 

 

 

 

 

 

당시 공화춘에서 사용하던 '의자'

 

 

 

음식 가격표

짜장면 가격이 150원, 탕수육이 900원이였군요.

 

 

 

쌀이 부족하던 시절 정부의 혼,분식 장려정책으로 짜장면은 국민음식의 반열에 올랐다.

 

 

 

지금처럼 외식이 흔하지 않던 시절

졸업 때면 흔히 보는 풍경을 미니어처를 만들어 놓았다.

 

짜장면 박물관에는 짜장면이 없다.

박물관이 차이나 타운 내에 있으니 밖으로 나가

맘에 드는 중국음식점을 찾아가면 된다.

 

 

 

철가방의 원조 배달통이다.

 

'명품 디자인 철가방'이란 제목으로 철가방의 명성을 기록 해 놓았는데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디자인문화재단은 지난 반세기 한국인의 일상을 대표할 수 있는

생활속 디자인 가운데 하나로 중국음식점의 '철가방'을 선정했다.

모나미 153볼펜, 신라면, 칠성사이다, 포니자동차, 시발택시 등과 함께 영예를 누리게 되었다 한다.

 

철가방이 명품의 반열에 오른 이유는 알루미늄의 색상이 밝고 깨끗한데다가

단순하지만 구조적인 기능이 뛰어난데 있다.

더불어 쉽게 열리지 않는 뚜껑, 음식을 쉽게 닦아낼 수 있는 편의성,

약간 찌그러져도 원상 복구가 쉬운 친근한 가변성도 돋도인다.

 

이 같은 장점들로 철가방은 후세에 물려 줄 우리 시대의 생활문화유산이 된 것이다.

비록 개발자나 디자이너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음식 배달용 도구인 '철가방'의 명성은 내내 빛을 잃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추억의 짜장면 그릇

지금은 프라스틱 그릇으로 모두 바뀌어 볼 수 조차 없지만

두툼하고 수더분한 사기그릇에 듬뿍 담아낸 국수와 짜장

 그리고 춘장과 단무지, 양파를 담아 내 놓았던 종지를 보는것 만으로도 정겹다.

 

 

 

청화 새우그림 면기 (1950년대)

 

 

 

종지에도 상호가 써있다.

 

 

 

꽃그림 면기 (1950년대)

 

 

 

우동이나 울면같이 국물이 있는 음식은 이런 그릇에 나왔다.

예전엔 중국집에서 요리를 먹다가 진주가 나왔다는 신문 기사를 종종 읽었던 시절도 있었다.

 

 

 

 

 

 

 

'고량주'

지금은 중국요리집에도 소주가 대세 이지만

예전엔 빼갈(고량주)을 호리병 같은 도꾸리병에 담아 팔았고

고량주잔에 부어 성냥불을 대면 잔 위로 불이 붙곤했다.

 

 

 

1970년대 음식 요금표

가장 저렴한 짜장면 450원, 탕수육 3,500원, 가장 비싼 요리 잡채양장피 6,000원

 

70년도에 나의 월급이 2만여원 춘천에서 독방 하숙비가 월/5천원으로 기억한다.

 

 

 

 

 

 

 

공화춘에 걸려 있던 액자로 수습유물 이다.

 

 

 

나무 의자도 공화춘 수습유물

 

 

 

2층 계단을 올라오면 공화춘 수습 '주련'이 좌 우에 붙어있다.

 

 

 

우측 주련의 해설을 밑에 붙여 놓았다. 

 

 

 

주련의 일부

 

 

 

좌측 주련의 해설

 

 

 

 

 

 

 

비록 깨진 그릇 이지만 지금은 소중하다.

왜...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니까.

 

박물관을 준비하던 누군가의 외침을 보는듯 하며

이런 파편들이 정성스럽게 전시되어 있다.

 

꼭 공화춘에서 수습된 유물이 아니더라도

다른 곳에서 짜장면 역사를 간직하던 유물이라면 함께 있어도 좋을것 같다.

 

 

 

공화춘의 주방

 

 

 

주방 쪽을 향해 외치던 중국어 주문과 함께 이곳에서 수타면 때리는 소리가 나던 곳이다.  

 

 

 

주방용 칼 과 도구들

 

 

 

 

 

 

 

 

 

 

 

월병 만드는 틀 인듯한데 우리의 다식판과 비슷하다.

 

 

 

'조왕신'

조왕신은 부뚜막 신으로 한 가정에서 일어난 일년 동안의 일을 옥황상제에게 보고하는 직책을 가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섣달 23일 저녁에 조왕신 그림 앞에 고기, 엿, 떡 등의 제물을 진설하고

제사를 지낸 후 조왕신 그림을 불에 태우는데 이것은 조왕신을 하늘나라로 보내는 것을 의미한다.

 

설에는 다시 조왕신 그림을 부엌 벽면에 붙이는데 이것은 조왕신을 다시 맞이한다는 뜻이다.

제물 가운데 엿과 떡은 조왕신의 입을 붙게 하여 옥황상제를 찾은 조왕신이 제대로 입을 열지 못하게 하는 것이고

술을 아궁이 주변에 바르기도 하는데 이것은 조왕신이 술에 취해 제대로 옥황상제를 찾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결국 집안의 나쁜 일을 옥황상제에게 알리지 못하게 하기 위한 조치이다.

 

 

 

 

 

 

 

 

 

 

 

 측면에 도르레가 달려있어 1~2층에 음식을 운반하는 도구로

이런 도구는 요즘도 일부 식당에서 볼 수 있다.

 

 

 

'공화춘 간판' 진품

1950년대 이전에 제작되어 공화춘 입구 외벽에 걸렸던 유물 3점

오랜 세월 비바람에 노출되어 훼손이 심하다.

 

 

 

'포판회석(연회석 완비)'

 

 

 

'특등요리'

 

 

 

기획전시실에는 여러가지 인스탄트 짜장도 전시 되어있다.

 

 

 

 

 

 

 

의선당에서 봤던 주춧돌 같은데 같은 용도인지? 정확한 용도가?

 

 

 

공화춘가 사람들

 

 

 

 

 

 

 

 

상단에 걸린 만국기에 일본기는 그렇다 치고 욱일승천기와 나치 깃발이 이채롭다.

 

 

 

'춘장 항아리'

 

 

 

 

 

 

 

화교 등기증

 

 

 

 

 

 

 

 

 

 

 

 

 

 

 

박물관 뒷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