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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宗廟)

송 죽 2013. 3. 19. 23:32

 

 

종묘는 사적 제125호로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1년에 정전에서 5번, 영녕전에서 2번

왕이 친히 주관하고 왕세자와 문무백관이 참여하는 국가 최고의 제사를 지내던 사당이며

태조가 한양을 새 나라의 도읍으로 정하고 짓기 시작하여 1395년에 경복궁보다 먼저 완공했다.

 

'궁궐의 왼쪽인 동쪽에 종묘를, 오른쪽인 서쪽에 사직단을 두어야 한다'는

고대 중국의 도성 계획 원칙을 따라 경복궁의 왼쪽인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왕이나 왕비가 승하하면 궁궐에서 삼년상을 치른 후에 그 신주를 종묘로 옮겨 모신다.

왕위에서 쫓겨난 연산군과 광해군의 신위는 종묘에 모시지 않았다.

 

현재 종묘제례는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 행하고 있으며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은 2001년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등재되었다.

 

 

 

 

종묘 맞은편 세운전자상가

도로와 상가 사이에 작은 녹색공간이 만들어 진것이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종로통에서 종묘의 정문 '외대문(外大門)'으로 가는길

 

 

 

 

 

 

 

 

 

 

 

 

 

 

'외대문(外大門)'

 

 

 

 

 

 

 

 

 

지당(池塘)

종묘의 정문 외대문을 들어서면 방형(方形)의 지당이 있는데 

못 가운데 둥근 섬이 있고 향나무를 심었다.

이는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평평하다) 사상으로 우주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연못 동쪽으로 '망묘루(望廟樓)'와 '향대청(香大廳)' 그리고 공민황신당이

일랑(一廊)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은 촬영금지 구역으로 사진이 없다. 

 

 

 

 

 

 

 

 

 

 

 

 

 

 

 

 

 

 


'재궁(齋宮)'

재궁은 5칸으로 왕이 목욕재계하고 의복을 정제하며

세자와 함께 제향 모실 준비를 하던 곳이다.

어재실 또는 어숙실이라 불린다.

4각의 담장이 둘러 있는데 정문, 동협문, 서협문이 있고

뜰 북쪽에 재궁, 서쩍에 어목욕청(御沐浴廳) 동쪽에 세자재실이 있다.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어재실(御齋室)' 

 

 

어재실 앞에 '드므'

드므는 '넓적하게 생긴 큰 독'이란 뜻의 순수한 우리말

안에 물을 담아 놓으면 화마(불귀신)가 왔다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 달아난다는 주술적 의미가 있으며

화재가 났을땐 실제 방화수로 사용하기도 한다.

 

 

 

 

 

 

정전의 동쪽 담장

 

 

 

정전에 있는 '공신당(功臣堂)'

조선시대 역대 왕의 배향 공신 83 신위를 모신 곳으로

정전 묘정 하월대 남쪽 아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영녕전 남쪽문

 

 

 

 

'영녕전(永寧殿)'

보물 제 821호로 정전 서쪽에 지어졌으며 

원래 6칸 규모였으나 현재 신실은 모두 16칸이다.


송(宋)나라 제도를 따라 영건된 별묘(別廟)로 태묘에 부묘(祔廟) 하였다가

친진(親䀌)하면 이곳에 조천(祧遷)하므로 조묘(祧廟)라고도 한다. 
 

정전의 신위를 옮겨 모시기 위해 1421년에 새로 지은 별묘로

건물 이름은 '왕가의 조상과 자손이 함께 길이 평안하라'는 뜻이다.

시설과 공간 형식은 정전 일원과 유사하지만 정전보다 규모가 작고 좀 더 친밀하게 지어졌다.

 

조선에서는 국왕이 승하하면 종묘 정전에 모시었다가

5세의 원조(遠祖)가 되었을 때 영녕전으로 옮기어 모시게 되어

 영녕전을 천묘(遷廟)한다는 뜻의 조묘(祖廟)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영녕전(永寧殿) 가운데 4칸은 태조의 4대조를 모신 곳으로 좌우 협실보다 지붕이 높다.

 

조선 태조의 선대 4조 및 종묘의 정전(正殿:太廟)에 봉안되지 않은

조선 역대왕과 그 비(妃)의 신위(神位)를 모셨다.

32위의 위패를 15실에 봉안하고 있다.

 

 

 

영녕전(永寧殿) 

 

 

 

 

 

 

 

 

 

 

 

 

 

 

 

 

 

 

 

 

 

 

 

 

 

 

 

 

 

 

 

 

 

 

 

 

 

 

 

 

 

 

 

 

 

 

 

 

 

 

 

 

 

 

 

 

 

 

 

 

 

 

 

 

 

 

 

 

종묘 제기: 종묘는 조선 역대 왕의 신주를 모신 사당으로 사용되는 제기는 국가에서 제작하여 관리하였다.

 

 

착준

가을과 겨울 제사때 술을 담는 제기이다. 

(종묘광장 출토,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찍음) 

 

 

 궤

보와 한 쌍을 이루며 기장과 피를 담는 제기이다.

(종묘광장 출토,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찍음)

 

 

 

조이

봄과 여름 제사때 술을 담는 봉황이 새겨진 제기이다.

(종묘광장 출토,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찍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