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가지]-----/국내여행

창경궁(昌慶宮)

송 죽 2012. 12. 23. 21:47

 

 

사적 제 123호인 '창경궁(昌慶宮)'의 처음 이름은 수강궁(壽康宮)이었다.

1418년 세종대왕이 왕위에 오른 후 살아계신 상왕(上王)인 태종을 모시기 위하여 수강궁을 지은것이다.

 

그후 세조(世祖), 덕종(德宗), 예종(睿宗) 세분의 비(妃)를 모시기 위하여

성종(成宗) 15년(1484) 명정전(明政殿), 문정전(文政殿), 통명전(通明殿) 등을 지어

궁궐의 규모를 넓히고 창경궁(昌慶宮)이라 이름을 고쳤다.

 

선조(宣祖)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타 버렸던 것을 광해군(光海君) 8년(1616)에 다시 지었다.

정전(正殿)인 명정전(明政殿)은 중건된 이래 원형대로 보존되어

조선 왕궁의 정전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 국보 제 226호로 지정되어 있다.

 

일제는 순종(純宗) 융희(隆熙) 3년(1909) 창경궁 안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개설하고 일반인에게 관람하게 하고

1911년 에는 일제가 궁 안에 박물관을 설치하면서 동, 식물원을 포함하여 창경원이라 이름을 고쳐 격을 떨어뜨렸다.

 

1983년부터 3년간에 걸쳐 창경궁을 왕궁 본래의 모습으로 복구하는 공사를 하여

창경원으로 격하시킨 궁의 이름을 창경궁으로 바로 잡고 궁 안에 있던 동물원과 놀이터 시설을 철거하였다.

그리고 문정전, 빈양문, 명정전, 월랑 등을 다시지어 왕궁으로서의 옛모습을 되살렸다.

 

 

 

 

 

홍화문(弘化門) 보물 제 384호

창경궁의 정문이며 2층 구조로 되어있다.

1484년(성종 15)에 건립되었고 임진왜란때 소실되어

 1616년(광해군 8)에 재건되었다.

(홍화문 사진은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복사해온 사진이다.)

 

 

 

 

창경궁의 정문(正門)인 홍화문(弘化門)앞 옥천교(玉川橋)를 건너 명정문(明政門)을 향해 갑니다.

 

 

 

 

명정문(明政門)

 

 

 

 

'잡상'

 

 

 

 

명정문(明政門) 계단

 

 

 

 

 명정전(明政殿)과 조정(정전앞 넓은 마당)

명정문(明政門)에서 바라 본 모습

 

 

 

 

명정전(明政殿) 정면 5칸, 측면 3칸, 단층 팔작지붕으로

현재 남아있는 조선시대 궁궐의 전각 중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며 국보 제 226호이다.

 

창경궁이 창건되던 때인 1483년(성종 14)에 건립되어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16년(광해군 8년)에 옛 모습으로 복원하였고 이때 지어진 건물이 지금까지 온전하게 보존되었다.

조선시대의 궁궐의 대전(大殿)은 남향으로 세웠으나 명정전은 예외적으로 동향이다.

 

 

 

 

명정전(明政殿)앞 마당엔 박석이 깔려있고 품계석이 양쪽으로 나열되어 있다.

 

 

 

 

명정전앞 월대 중앙 돌계단

 

 

 

 

월대 중앙계단 '어계 무늬'

 

 

 

 

봉황을 새겨놓은 '답도'

답도: 국왕의 가마가 지나는 계단의 바닥 장식돌

 

 

 

 

명정전(明政殿) 내부 천장

황금색의 쌍봉으로 장식되어 있으나

퇴색한 단청은 흘러간 세월의 흔적이 역역하다. 

 

 

 

 

'당가'

불전에서는 '닫집'으로 정전은 '당가'라 부른다.

 

 

 

 

'어좌'와 '일월오봉병(日月五峰屛)'

 

 

 

 

'공포'

 

 

 

 

문정전(文政殿)

임금이 신하들과 회의를 열고 의견을 나누던 창경궁의 편전으로

동향인 명전전과 달리 남향 건물이다.

편전이면서도 왕실의 신주를 모신 혼전(魂殿)으로도 쓰였다.

 

 

 

 

숭문당(崇文堂)

1830년에 세워진 숭문당은 명전전의 후전에 해당하는 건물이며 

임금이 신하들과 경연을 열어 정사와 학문을 토론하던 곳으로

앞쪽에 설치한 누각형 툇마루로 출입하였고

현판은 영조 임금의 친필 현판이다.

 

 

 

 

숭문당(崇文堂) 측면

 

 

 

 

 

 

 

 

향나무

뒤로 보이는 담넘어가 '창덕궁'

 

 

 

 

주목

 

 

 

 

 

 

 

 

 

 

 

 

 

 

함인정(涵仁亭)

함인정은 '세상이 임금의 어짊과 의로움에 흠뻑 젖는다'는 뜻을 상징하며

문무 과거에 급제한 신하들을 접견하던 곳으로

조선시대 임금들이 편전으로 사용했다.

 

1633년에 건립되었으며 순조 30년인 1830년

창경궁에 화재가 나 전소되었으나 1833년에 다시 중건하였다.

 

아홉칸의 팔작지붕이며 화려한 단청으로 채색되어 있으며

벽체가 없고 사방이 모두 터진 개방형 건물로 남향이다.

 

 

 

 

석탑

석탑에 대한 설명이 없다.

 

 

 

 

'경춘전(좌)'과 '환경전(우)'

경춘전은 26칸의 비교적 큰 전각으로 성종의 어머니 소혜왕후 한씨, 사극의 단골 인물 인현왕후

 남편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 비극을 겪은 혜경궁 홍씨 등

많은 왕실의 여인들이 거처하며 그들의 자취를 남기고 떠난 곳이랍니다.

 

 

 

 

환경전 처마

 

 

 

 

'용두'

 

 

 

 

 

 

 

 

 

양화당(養和堂)

1834년에 지건한 양화당은 내전의 접대공간으로 사용되었으나

병자호란 때 인조가 환도하면서 머무르기도 한 곳이다.

 

 

 

 

양화당(養和堂)

 

 

 

 

양화당의 굴뚝

 

 

 

 

 

 

 

 

 

 

 

 

 

 

창경궁 풍기대(風旗臺)

보물 제846호로 전체 높이 228.1cm, 하부대석 높이 92.4cm,

넓이 62.8×61.5cm, 상부 8각주 높이 135.7cm, 지름 43.2cm이다.

 

 영조 8년(1732)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며

풍기대 위의 긴 팔각기둥 구멍에 깃대를 꽂고 그 깃대에 기를 달아

바람의 방향과 속도를 재던 것으로 방향은 24방향으로 측정하였다.

 

 

 

 

 

탁자 모양의 돌 위에 긴 팔각기둥엔 넝쿨무늬를 정교하게 새겼다.

 

 

 

 

입체 해시계 '앙부일구'

보물 제 845호로 17세기 후반에 제작

 

 

 

 

 

 

 

 

 

 

 

 

 

 

 

 

 

 

 

 

 

 

 

 

내전터로 궁궐 여성들의 처소가 가득했던 생활구역인데

1830년 화재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모든 내전들이 사라졌다.

 

어린시절 창경원 동물원 구경가면

이곳에 여러 동물들의 우리가 있던것으로 기억되며

지금은 나무숲으로 조성되어 있다.

 

 

 

 

내전터에 있는 느티나무

수령이 500년 정도된 창경궁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란다.

 벼락에 의한 피해를 받기도 했다는데 겨울철이니 잎은 안보이고 고사한듯 보인다.

 

 

 

 

'춘당지'

창덕궁쪽 절벽인 춘당대와 짝을 이룬 연못이었으나 지금은 담장으로 나뉘어 있다.

 

임금과 왕비가 각기 농사와 양잠을 체험할 수 있도록

궁궐 안에 둔 논과 뽕밭인 내농포(內農圃)에 속한 논을 연못으로 만든것

 

 

 

 

어린시절 기억으론 이곳 저수지 가운데 섬이있는 곳에 작은 분수가 있었고

붐수 위로 케이블카가 지나갔던 것으로 기억된다.

 

 

 

 

 

 

 

 

 

 

 

 

 

 

 

 

 

 

 

대온실(식물원)

대온실은 1909년에 완공하여 식물원으로 공개한 건물이다.

목조로된 가느라란 뼈대로 뾰족아치와 창틀을 만들고 유리를 끼웠다.

전체적인 모습은 당시 서양에서 유행했던 수정궁류의 근대 건축을 연상기키지만,

지붕 용마루에 조선왕실의 문양인 오얏꽃을 반복하여 장식한 것이 특징이다.

대온실 앞에는 르네상스풍의 분수와 미로식 정원도 함께 조성했다.

 

 

 

 

 

 

 

 

 

'백송' 

춘당지 바로 앞에 있다.

하얀 껍질이 특징인 소나무과의 백송은 원래 고향이 중국 베이징 부근이며

조선왕조때 사신으로 간 관리들이 귀국할 때 솔방울을 가져다 심은것이란다.

 

 

 

 

 

 

 

 

 

 

 

 

 

 

 

 

 

 

 

 

 

 

 

 

 

 

 

 

 

 명정전(明政殿)

 

 

 

 

 명정전(明政殿) 가는 북쪽 행각

 

 

 

 

 명정전(明政殿) 행각

 

 

 

 

 명정전(明政殿) 전경

 

 

 

 

북악산도 보이고

 

 

 

 

행각 뒤로 보이는 문정전 지붕

 

 

 

 

명정전(明政殿) 앞마당과 행각(行閣)

맞은편은 장랑(長廊), 우측 명정문

 

 

 

 

명정문

 

 

 

 

명정전(明政殿)

 

 

 

 

 

 

 

 

 

 

 

 

 

 

창경궁 '관천대' (보물 851호)

1688년 축조된 관천대는

계단과 난간만으로 간결하게 구성한 건축물로

대 위에 소간의(小簡儀)를 설치하여 천체를 관측하던 시설이다.

 

 

 

 

 

종묘쪽으로 걸어가며 우측 담장넘어(창덕궁)를 보면서 낙선재 정자를 담았는데

다음엔 이곳 창덕궁을 관람하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