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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퓌센) 노이슈반슈타인 성(신 백조의 성)

송 죽 2012. 5. 16. 00:49

 

 

노이슈반슈타인 성(신 백조의 성) 북쪽 모습

 

 

 

 

현 위치 1번 

그림이 그려져 포인트 표시에 어려움이 있어 고양이 얼굴과 숫자를 적어 놓았습니다.

1, 노이슈반슈타인 성(백조의 성) 2, 점심먹은 식당 3, 셔틀버스및 마차 승차장 
4, 셔틀버스 종점 5, 마리엔 다리 6, 알프 호수와 호엔슈방가우 성 뷰 포인트 
7, 호엔슈방가우 성 8, 알프제 호수(스탄베르그 호수) 9, 포르겐 호수 10, 하산코스 

 

 

 

 

노이슈반슈타인 성(신 백조의 성) 평면도

 

 

 

불운한 삶을 살다 간 '루트비히 2세'

어려서 부터 시와 노래와 미술에 능했고 건축도 깊이 공부를 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예술적으로 민감한 소년이 열일곱살에 아버지와 함께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을 본 뒤

로엔그린의 백조의 전설과 작곡가 바그너에 십취하게 되지요.

 

 

 

 

 

 

 

 

 

동쪽 성벽

 

 

 

 

 

 

 

 

 

성문으로 가는 길가에 피어있는 이름모를 봄꽃들

 

 

 

 

 

 

 

 

 

 

 

 

 

 

 

 

 

 

 

 

 

 

 

 

성문(출입구)

 

 

 

 

 

 

 

 

 

출입구에서 바라본 성 내부

 

 

 

 

 

 

 

 

 

 

 

 

 

 

성 내로 들어와 외벽계단을 올라 건물로 둘러쌓인 2층 광장에서 본 서쪽 건물

실내엔 엄청난 장식이 있다는데 못들어 갔는데 구내는 철저한 촬영 금지구역이랍니다.

 

 

 

 

'루트비히 2세'는 열아홉살인 1864년 바이에른 왕에 오르며

왕위에 오른 5년뒤 부터 오페라 '로엔그린'의 주인공이 사는 곳을 꿈꾸며

자신이 직접 설계하여 17년 동안 사비(왕가의 돈)를 퍼부어 백조의 성을 짓지요.

 

 

오스트리아 공주와 약혼했다가 파혼한 뒤 스스로의 세계에 침잠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190cm의 늘씬한 체격이 뚱뚱하고 볼품없는 몸매로 변해갔으며

그후로 초상화도 사진도 남기지 않았다고합니다.

 

 

 

 

 

 

 백조의 성 건설과 함께 착수한 일이 음악가 바그너 후원이었으며

가난했던 바그너에게 집은 물론 풍족한 생활비까지 대주며

대 작곡가로 설 수 있게 밀어줬던 것이지요.

 

 

 

 

 

보불전쟁을 앞둔 비스마르크는 바이에른 왕 루트비히 2세에게

비상한 정치적 처신을 요구했지만

 뮌헨에서의 왕궁생활에 실증을 느끼고 정세와 무관하게 살고 싶었던 그는

전설속의 성을 꿈꾸며 백조의 성 짓는 일과 바그너를 예찬하는데 모든 걸 바쳤고

 

 

 

 

 

 

정치와 전쟁없는 세상을 꿈꾸며 모든것을 모를체 회피했던 낭만 군주는

결국 신하들에 의해 정신병자로 몰려 아버지의 호헨슈방가우 성에 감금된지 사흘뒤

알프 호수에 익사체로 떠올랐다는데 이때가 1886년 그의 나이 41세 때였습니다.

 

 

 

 

  루트비히 2세는 수영도 선수급 이였다는데 익사했다니

역사의 기록은 강자의 몫이니 정적들이 만들어낸 날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어두운 삶의 그림자를 짙게 남긴 채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린

루트비히 2세의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입니다. 

 

 

 

 

 

그가 없었다면 지금 이 아름다운 성을 볼 수 없었겠지요..... 

 

 

 

 

 

 

 

 

 

건물내 2층 마당에서 본 동쪽 건물

 

 

 

 

베이지색 벽체는 모두 동쪽 건물입니다.

 

 

 

 

 

 

 

 

 

 

 

 

 

 

 

 

 

 

 

셔틀버스에서 같이 몸을 부닥치며 타고 올라오는데

작은 체구의 도양인이 카메라를 들고

이리뛰고 저리뛰는 모습이 가상했던지

친근하게 닥아와 눈인사를 나눈 게르만족 친구들로

 

 

성에서 다시 만나니 반갑게 아는척 하며

단체사진 찍으라고 포즈를 취해 주네요.

 

 

 

 

매우 푸근한 인상의 젊은이들

이들의 골격이 대단하더군요.

 하나같이 장대했습니다.

 

 

 

 

 

 

 

 

 

 

 

 

 

 

 

 

 

 

 

 

 

 

 

 

 

 

 

 

 

마리엔 다리아래 폭포를 이루며 쏳아져 내리는 눈물(雪水)

(엉뚱한곳에 촛점을 맞춰 마리엔 다리를 찍은후 다리 아래를 찍은 사진)

 

 

 

 

 

 

 

 

 

 

 

 

 

 

 

 

 

 

 

성의 외벽은 흰색과 동쪽엔 베이지색 대리석을 사용해

중세의 우아한 멋을 한껏 풍기면서도 가볍지 않도록 장식한 것이 특징입니다.

 

 

 

 

날씬하며 우아한 자태로 건축한 성의 지붕은  

여러 개의 남청색 원추들이 하늘을 향해 솟아올라 예술미를 더하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