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위에 떠있는듯 보이는 '산 조르조 마조래 성당'
보트에서 내리니 맞은편 섬에 가장 크게 눈에 들어 오더군요.
섬 이름도 성당과 같은 '산 조르조 마조래 섬'
종탑에 오르면 섬 전체가 보여 조망하기가 좋다 합니다.
선착장에서 해변을 따라 저 끝에 산마르코 종탑으로 걸어 갑니다.
밑에 지도에서 검은선이지요.
보트에서 내려 해안가인 검은선 부분을 걸어서 갑니다.
'산 조르조 마조래 성당'
'팔라디오'가 설계, 1556년에 착공하여 1610년에 완공했다니 55년이 소요되었네요.
성당 안에는 '티토레토의 "최후의 만찬"'이 유명하고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있는 '가나의 혼인잔치'가
(http://blog.daum.net/sc2248/17947887)
이곳 수도사들의 식당에 걸린걸 나폴레옹 군대가 떼어 간것이랍니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호텔 테라스의 연인
해변가 풍경으로 도로엔 수로로 인해 끊겨있는 곳이 아무런 방벽도 없어요.
너무 한눈팔다간 짠물 맛을 볼 수 있으니 조심하고 다리를 이용하세요.
해변은 모두 선착장으로 이어져 있이며
하얀배가 이곳 시민의 발 '바포레토(수상버스)'
현지 가이드가 인공섬 수면밑 기초를 설명중 인데
수면밑 기초작업이 건물의 높이만큼 이루어졌답니다.
집들은 모두 석조건물 이지만 그 밑은 나무기둥이 박혀있는 것이지요.
백향목을 일정한 간격으로 뻘에 박고 그 사이에 잣나무 기둥을 박아
그 위에 건물을 짓는 방식입니다.
물속엔 산소가 적어 나무가 잘 썩지않고
물속 광물질과 화학반응을 일으켜
경화현상으로 나무가 바위처럼 굳어진답니다.
드디어 해변도로을 잇는 다리 위에서 골목길(수로)를 바라봅니다.
이런 골목길이 사방팔방 뻗어있고 다리로 모두 연결되어있습니다.
방금전 현지가이드님이 설명한 물밑을 상상하며 보신다면 대단함을 느낄겁니다.
좌측에 '메트로폴'이라는 글씨도 보이네요.
수직벽에 쪽문이 있고 배와 출입하는 난간이 있더군요.
길거리 기념품가게
여러가지 물건중 화려한 가면이 눈길을 끕니다.
가면은 조그만 열쇠고리,자석이 있어 냉장고에 붙이느것 얼굴을 가리는 큰것까지 다양합니다.
베네치아에는 10일동안 열리는 베네치아 카니발이 유명한데
카니발중 셩대한 가면 축제가 있어 이때 사용하는 가면이랍니다.
우리나라의 투박한 탈과는 너무 대조적입니다.
종이같은 재질(계란판 비슷함)로 만들어져 가볍고 화려해서 하나쯤 구입할 만합니다.
이 건물은 '피에타(La Pieta) 성당'이라 불리는 소박하면서도 고풍스러운곳
가운데 붉은 지붕에 십자가 세워진건물이 '피에타 성당'
우측건물이 비발디가 '사계'를 작곡한 곳이며
지금은 2층 정면에 국기와 메트로폴 이라고 쓴 간판이 붙어있습니다.
이곳에서 좌측에 그의 생가도 있답니다.
비발디는 사제역 대신 '라 피에타 성당'의 부속기관인 고아들을 가르치는 음악교사로 임명받아
고아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가르치며 매주 이곳에서 공개 콘서트를 하였다.
수준이 상당히 높아서 여행객들에게는 관광코스였을 정도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비발디가 가르쳤던 베네치아 자선 병원 부속의 여자 음악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는데
처음에 바이올린 교사로 있다가 1716년에 합주장, 후에 합창장도 겸하게 되었고
이 학교의 학생을 위해 모테트나 칸타타, 오라토리오, 협주곡, 미사 등의 많은 곡을 작곡했답니다.
베네치아(Venezia) 태생의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
건물외벽 한켠에 붙어 있더군요.
1678년 산 마르코 대성당 바이올린 주자였던 아버지의 장남으로
어머니가 지진에 놀라는 바람에 칠삭둥이로 태어나 병약했다는군요.
아버지로 부터 바이올린을 배우는 한편
레그렌치(Giovanni Legrenzi, 1626~1690)에게 작곡을 배웠지요.
이탈리아의 작곡가·바이올린 연주자로 40여 곡의 오페라를 비롯해
종교적 성악곡, 가곡 등을 남겼는데 기악곡은 음악사에서 특히 중요한 구실을 했다지요.
여배우와의 염문설. 괴팍한 성격과 낭비벽 등으로 고향에서 쫓겨나고
오스트리아 빈에서 객사하여 빈민묘지에 묻힙니다.
사물의 수평을 맞추려는데 하얀종탑이 거슬리는게 아무래도 기울은듯 하더군요.
수로만 보면 신기해서 기웃거리니 일정에 쫒기는 가이드는 난감한듯
거미줄처럼 뻗어있는게 수로이니 더 좋은것 보여주겠다고 달랩니다.
좁은 수로엔 앙증맞은 카페까지 있네요.
'로간다 비발디 호텔' (다리뒤 흰건물) 은 비발디 생가로 지금은 호텔로 개조되여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측높은 건물은 '라 피에타 성당'
'프리지오니 누우베라 감옥'
두칼레 궁전 법정에서 재판을 받은 죄수들이 수감되던 감옥으로
캄캄한 지하 감방의 벽은 납으로 밀폐되어 온도차가 심해
죄수는 얼마 살지못하고 죽게되는 악명높은 감옥이랍니다.
굵은 쇠창살이 감옥의 악명을 대변 하는듯합니다.
이곳을 살아서 탈옥에 성공한 유일한 죄수가 있다는데
그는 베네치아 출신의 유명한 바람둥이 '카사노바'였답니다.
카사노바는 한장의 메모를 남겨두고 탈옥에 성공하는데
메모에는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가둘때 나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듯이
이제 나도 자유를 찾아 떠나며 당신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겠소'
교도소장과 간수를 매수해 그를 탈출시킨건
바로 카사노바의 숱한 애인들 이었다고합니다.
그는 여성 때문에 투옥 되었으나 다시 여성의 도움으로 탈옥한것이지요.
'두칼레 궁전'
우측은 다리위에서 탄식의 다리를 보기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습니다.
'탄식의 다리(Ponte dei Sospiri)'
작은 운하를 사이에 두고 왼쪽 팔라초 두칼레 궁전과 오른쪽 감옥을 이어주는
19세기 작가들이 이 다리를 작품에 자주 이용하였다며
관광객이 꼭 들러야 하는곳 이라는데
양쪽 건물은 공사중인듯 칸막이를 해놔 아쉽게 안보입니다.
두칼레 궁 법정에서 판결을 받은 죄수가 다리를 건너
캄캄한 감옥으로 들어가는 통로(위와 옆이 완전히 덮혀있음)로
다시는 살아서 나올 수 없는 감옥이라는 악명을 알기에
좁은 무늬의 장식을 한 창이 있을 뿐이지만
다리를 건너는 죄수는 바깟 세상을 마지막으로 불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니
저곳에서 밖을 내다보며 탄식을 했다는 데서 이름이 붙었다 합니다.
베네치아 공화국 정부 총독관저 '두칼레 궁전'
꼭대기엔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가 왼손에 천칭을 들고 오른손엔 칼을 들고 있습니다.
그밑으로 벽면의 무늬가 독특하게 보였던 건물이었는데 고딕건축으로
9세기에서 15세기까지 이어지며 비잔티, 고딕, 르네상스 양식이 혼재된 건축물이랍니다.
동그란 원안에 네잎크로버 같은 문양은 궁전에만 사용할 수 있는 문양이랍니다.
선착장에서 내려 걸어온 길을 두칼레 궁에서 뒤돌아 봤습니다.
이 길이 베네치아에서 가장 넓은 길이랍니다.
'-----[가지가지]----- > 해외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 마르코 대성당과 종탑 (0) | 2012.03.20 |
---|---|
(이탈리아 베네치아) 두칼레 궁전 (0) | 2012.03.19 |
(이탈리아) 베네치아가 눈앞에... (0) | 2012.03.14 |
(이탈리아) 베네치아(베니스)의 아침 (0) | 2012.03.11 |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베네치아(베니스)로 (0) | 2012.03.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