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의 침실에 있는 침대입니다.
침대보는 물론 장식은 이 방의 마지막 주인인 '마리 앙뜨아네트'가
1789년 10월 6일 이 방을 떠나던 순간의 장식을 그대로 보존한것 이랍니다.
메트와 커튼이 지금은 빛바랜 듯한 색이지만
화사한 느낌의 꽃자수는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침대머리의 조각에선 금장식이 굴러 내릴듯 생생하고
한땀한땀 놓았을 화사한 꽃무니자수는
요즘 기계로 놓은 수 와는 격이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마리 앙뚜아네트를 비롯한 3명의 왕비와 2명의 세자비가 침실로 사용한 방으로
왕의 아파트로 연결된 비밀통로가 있다는데 침대좌측 쪽문이 그문일까?
이곳에서 19명의 왕자와 공주가 태어났다고 하구요.
루이 15세와 17세도 이곳에서 태어 났다고합니다.
당시 베르사이유궁의 모든 사생활이 공개되어 있어 수많은 귀족들은
마리 앙뚜아네트의 식사장면, 옷갈아 입는 장면,
그리고 목욕하는 장면까지 따라다니며 보았으며
심지어 출산하는 모습까지도 공개되어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아기를 출산했다고 합니다.
침대 위의 닫집 가운데엔 프랑스의 국조 수탉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우측 벽 거울위에 마리 앙뜨아네뜨의 어머니인
'마리 떼레즈'의 초상화가 보입니다.
왕비의 침실 천장 장식화입니다.
전체가 황금의 단색문양으로
자비. 풍요, 믿음. 신중함이라는 왕비의 덕목이 주제랍니다.
베르사이유궁의 마지막 왕비인
'마리 앙뚜아네트'(1755~1793)는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
오스트리아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이다.
1770년 14살 어린나이에 말도 안통하는
프랑스 루이 16세와 정략결혼 1774년 왕비가 된다.
4명의 자녀가 있었으며 사교등
많은 모임에 그의 아름다움은 작은 요정이라 불렸지만
프랑스 혁명이 시작되자 연행되어 국고를 낭비한 죄와
오스트리아와 공모하여 반혁명을 시도했다는 죄명으로
결국 1793년 10월 16일 콩코드광장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하는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이런 화려한 침실보다
정원의 조그만 별궁 '그랑 트리아농'에 머무는것을 더 즐겼답니다.
[평화의 방]
천장화는 유럽이 평화를 되찾은 장면을 묘사한 '르 브랭의 작품
'토르소(Torso)'
에티켓의 기원이 된 베르사이유궁
예절, 예법을 나타내는 말인 에티켓의 어원은
베르사이유궁전 주위에 세워놓은 나무말뚝에서 비롯되었는데
행동이 나쁜 사람이 베르사이유 궁전의 화원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출입금지' 라고 쓴 나무말뚝을 박아 놓은것이 에티켓의 어원이 된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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