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산 자재암(逍遙山 自在庵) 일주문
자재암의 연혁(沿革)
본 사찰은 신라 선덕여왕14년(AD 645) 경에 원효대사께서 개산(開山)하여
산 이름을 소요(消遙), 절 이름을 자재암이라 하고 수행을 쌓던 도량이다.
그후 고려 광종때와 조선조 고종때에 각각 중창한 적이 있고
이때에 사명(寺名)이 영원사(靈源寺)로 개칭되었으나 곧 다시 자재암(自在庵)이라 부르게 되었다.
6.25의 전란을 입어 지금의 건물들은 그후 복원된 것이며,
1981년에 사찰 경내에 있던 구 상가촌을 지금의 상가지역으로 이전시키고
일주문을 신축하는 등 환경을 일신하여 청정한 수도 도량으로 면모를 갖추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위에는 요석공주별궁지, 이태조행궁지, 원효대, 원효폭포, 백운선원, 옥로봉,
청량폭포, 나한대, 의상대, 선녀탕, 선녀폭포, 김송굴, 사자암지 등이 있다.
일주문 뒤 좌측에 약수터가 있고, 우측에 매점이 있다.
약수터에는 코로나19의 예방 차원에 컵이 없다.
개인컵을 휴대하고 마셔야 한다.
좌측: 원효폭포, 정면: 원효굴
원효굴 내부
원효폭포
요즘 메마른 날씨 탓인지
수량은 만족할 만큼은 아니지만 쉼없이 물이 흐르고 있다.
108계단
저 멀리 계단끝에 금강문이 있고 금강문을 들어서면 원효대 이다.
금강문(金剛門)
신비한 광명이 어둠을 깨치고 만고에 오랫동안 그 빛을 발하니
불법의 문안으로 들어오려면 아는체하는 분별심을 버려라.
(금강문 좌우측 기둥의 글을 풀어 놓은 글입니다.)
김시습(매월당)이 자주 거닐던 산인 소요산은 경관이 빼어나고 휴양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하백운대 중백운대 상백운대를 비롯해 나한대, 의상대, 공주봉의
여섯개의 봉우리가 말발굽 모양으로 능선을 이루고 있다.
'경기의 소금강'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소요산은 계곡과 폭포를 찾는 이들이 많고,
산 중턱에 있는 명사찰 자재암까지의 산행도 해볼 만한 자재암 이후로는 본격적으로 길이 가파르지만
능선으로 접어들면 경사가 완만해 무리한 산행은 아니다.
진달래가 필 무렵인 4월 초부터 단풍이 지는 10월 말까지 특히 아름답다.
원효대
이곳은 원효굴 상부로 원효 스님이 정진 중에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머물며 좌정하고 수도하던 장소다.
원효대에서 바라 본 풍경
원효대에서 내가 올라온 계곡을 내려다 본 모습
산세가 수려하고 아름다워서 경기의 소금강(小金剛)이라고도 한다.
단풍이 아직은 이른듯, 다음주 정도면 절정일듯 싶다...
햇살이라도 비춰주면 사진발이 좀 좋았을 텐데
비 안맞은 걸로 위안을 삼아야지
사리탑
원효대를 지나 자재암으로 가는 계단
해우소
자재암 입구에 있다.
자재암(自在庵) 전경 (향토유적 제8호)
자재암은 신라(新羅) 선덕여왕 14년(645)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창건한 유서깊은 사찰로서,
고려(高麗) 광종(光宗) 25년(974) 왕명으로 각규대사(覺圭大師)가 중창했으며,
의종 7년(1153) 화재를 당해 이듬해 각령선사가 대웅전과 요사 일부를 중건했다.
그뒤 조선 고종(高宗) 9년(1872) 원공선사와 제암화상이 퇴락된 이 사찰을
44간의 건물로 복원하고 영원사(靈源寺)라 개창했다.
순종 원년 (1907) 정미의병 때는 이곳이 의병활동의 근거지였던 탓으로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불태워졌다.
그 후 제암화상과 그의 제자 성파(性波)스님이 복원, 원래 이름인 자재암으로 고쳤다.
그러나 6.25 때 다시 폐허가 되어 1961년에 대웅전을, 1971년에 요사를,
1974년에는 포교당과 원효대를, 1977년에는 삼성각을 각각 건립했다.
경내와 주변에는 1980년에 조성한 석굴, 추담대사 사리탑, 속리교, 세심교가 있다.
최초의 창건자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수행하는 동안
요석공주(瑶石公主)가 아들 설총(薛聰)을 데리고 와 머물렀다는 요석공주 궁지(宮址)와
사자암지, 소요사지, 현암지, 원효사지, 조선 태조 궁지가 있다고 하나 그 위치는 알 수 없고,
의상대, 나한대, 금송굴, 선녀탕, 선녀폭포, 청량폭포 등이 있어 경관(景觀)을 더해주고 있다.
대웅전
나한전
자연 석굴이다.
독립암
청량폭포
나한전
나한전
석등
나한전 내부
원효약수
나한전 우측에 용 한마리가 똬리를 틀고 입에서 약수가 나온다.
동양 삼국 불교계의 거인인 원효 스님은 차(茶)의 달인으로도 널리 알려진 고승이다.
스님은 전국 곳곳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절을 창건하였는데
원효수님이 자리를 잡은 절터엔 필연적으로 약수가 나오며
찻물로는 으뜸인 석간수(石間水)가 솟아 올랐다고 한다.
그 중 1천 3백여 년 전 수행하셨던 소요산 자재암의 원효샘 석간수는
찻물로 전국에서 손꼽히는 명수(名水)로 이름이 나 있다.
신라 고려 때는 물론 조선중기 까지도 시인 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하는데,
특히 고려시대 시인인 백운 이규보는 이 물맛을 '젖처럼 맛있는 차가운 물'이라고 감탄하는 등
원효샘은 전국에서 유명한 차 문화 유적지가 되었다.
약수터엔 바가지(컵)가 있는게 상식 이지만,
이날 두 곳의 약수터엔
요즘 코로나 19로 바가지를 모두 치우고 개인 그릇만 사용이 허용돼
명수(名水) 라는데도 물 맛을 못보고 아쉽게 발길을 돌려야 했다.
나한전과 독립암
자재암 대웅전
원효대 오르는 계단
108계단
소요산 전철역
역 옆에 2개의 호떡가계가 손님들로 불이난다.
방금 전 전철이 출발하고 다음 출발 까지는 30분을 기다려야 하니
호떡이라도 먹으며 시간을 때워야 겠다싶어
나도 줄을서 기다렸다 하나(천원) 받아왔다.
전철 홈에 들어서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전철을 기다리고 있다.
경원선은 지금 복선화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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