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 하느라 집 밖에 안나간지 어언 3개월이 넘었다.
그런데 이날은 경기도 동두천 소요산에 단풍구경을 하려고 소요산 역에 왔다.
경기도 연천에서 업무를 끝내고 바로 달려온 곳이 소요산 역이었다.
소요산을 택한 이유는 어언 60년 전 국민학교 가을 소풍을
이곳으로 왔기 때문에 언젠가 한번 가보겠다고 늘 벼르던 곳인데
이제 단풍철도 됐고 하니 단풍구경도 할 겸 찾아 온 것이다.
연천에서 업무를 끝내고 급히 달려오니
10시 50분 소요산 전철역에 도착했다.
소요산 전철역은 1호선 전철의 종점 역이다.
전철이 막 도착했는지 등산복 차림의 무리들이 쏱아져 나와
잠시 짬을 보다 찍은 사진이다.
전철역 앞 횡단보도
이분들만 따라가면 소요산에 갈것 같다.
주변은 물론 골목이 모두 먹거리 상가인데
점심을 먹기엔 이르고 산에가면 배고플것 같아
길건너 소요단팥빵 집에 들어가 달달한 도넛 한개와
손바닥보다 조금더 큰 피자를 하나 사서 잘라 달라고 했더니,
입에 넣기좋게 잘라 비닐봉지에 넣어 준다.
빵을 챙겨들고 나와보니 그 많던 사람들이 싹 사라졌다.
잠시 당황하다 어릴적 기억을 더듬어
동쪽으로 가려고 골목을 보니 사람들이 보인다.
골목길에 등산 안내도가 서있는데 코스가 3개나 된다.
어디로 갈것인가 망설이다 1코스 (초보자 코스)로 결정...
붉은선이 오늘의 코스
국도에서 소요산 입구까지 '소요맛거리'가 있다.
소요맛거리를 지나 3거리가 나오는데
좌측으로 가면 산림욕장으로 가는 길이라고 알려준다.
입구부터 이것저것 많이 보인다.
'애국지사 홍덕문 선생 추모비'
남양 홍씨인 홍덕문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해 음력 2월 25일 장날 정오에
1천여명의 군중을 인솔하여 선두에 서서 만세를 불렀다.
일본 헌병에 체포되어 갖은 고문을 당했으나 굴하지 않았다.
형기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 왔으나 형독(刑毒)으로 인하여
수년 후 지금의 걸산동에서 타계하셨다.
1991년 홍문덕 선생의 고귀한 순국 이념과 애국정신을 기리는 마음으로
이곳에 추모비각(높이:5.7m, 폭:3.4m)을 건립하였다.
입구에 '소요산 자재암'이라는 비가 도로와 주차장 경계에 서있다.
좌측은 자재암 가는길 우측은 주차장
입구는 넓은 주차장에 음식점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좌측에 건강오행로라고 우레탄으로 시공된 인도가 있어 걷기 편하다.
강산이 5~6번 바뀌기 전인
초등학교 5학년 가을 소풍을 이곳 소요산으로 왔었다.
청량리 역에서 기차를 타고 오며 차창 밖으로 도봉산을 처음보며 신기해 했고
소요산 역에 내려 이 길을 걷는데 그때는 주변에 집도 없이
거칠은 자갈길이 넓게 펼쳐저 목적지도 모른채
담임 선생님이 인도하는 대로 지루하게 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산에는 큰나무는 거의 없고 작은 잡목들이 자라고 있었으며
여러 기암괴석의 바위들이 인상깊게 눈에 들어 왔는데
지금은 나무들이 울창하고 높이자라 옛모습의 바위는 찾을길이 없다.
건강오행로가 끝나고 차도로 나오니 주차장 끝부분
이태조 행궁지
조선 태조의 행궁이 세워졌던 자리로,
주차장 끝 소요산관광지원센타 앞에 있다.
조선시대 태조 이성계는 형제들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태종에 대한 증오심이 매우 컸다.
태종이 즉위한 뒤 태조는 한동안 한양을 떠나
소요산과 함주(咸州; 지금의 함흥)에 머물렀는데,
태조가 함주로 떠나기 전 소요산에 있을 때 거처했던
별궁지를 '이태조행궁지'라 한다.
'알'
알은 생명의 시작, 꿈의 씨앗, 그리고 모든 것의 가능성.
당신이 꿈꾸는 모든 것이 이 알에서 잉태되나니
어미새 처럼 애오라지 그 알을 품으면 꿈은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도로변에 '알' 이라는 커다란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조형물 뒤에는 에어 콤프레셔가 있어 몸에 묻은 먼지를 날려 보낼 수 있다.
반공희생자 위령탑
1950년 6월 25일 전쟁 발생 당일 점령당하여
1950년 10월 8일 국군 8사단에 의하여 수복될 때 까지
양주군 이담면(동두천시), 은현면 거주 군경가족과
반공 애국청년 들이 학살, 납치 피해를 입었다.
공산침략을 막아낸 군번없는 반공투사,
구월산 유격대 1472위의 숭고한 호국정신과
관내 학살피해자 22위의 애국충정을 길이 전하며
희생자들의 영령을 추모하고
자유수호의 고귀함을 굳건히 다지는 이정표로 삼고자
위패를 모셔 설립한 위령탑이다.
높이 12m 폭 2m 규모에 탑신은 3면이고
가운데 흑색 선은 희생자에 대한 조의를 표한 것이고,
화강석으로 쌓아올린 70개의 기단 돌은 7만,
당시 동두천 시민의 정성을 의미 한다고...
고즈넉한 계곡 웅덩이에 겨울채비를 한 고목의 반영
애기단풍의 군락
이녀석들이 붉게 물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 보는데
현실은 여름 빛 그대로 싱싱하다.
작품명: 고향이야기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연이 있다.
주차장을 지나면서 좌측은 차도, 우측은 짙은 가을빛의 계곡이다.
저 멀리 공원에 화려한 단풍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 공원에만 은행나무와 단풍나무가 제대로 단풍이 들었다.
햇볕이 비춰주면 좀더 화사 하련만 비가올까 걱정을 하는 상황이 아타깝다.
우측 계단은 '독립유공자 추모비'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독립유공자추모비가 보인다.
독립유공자추모비
이곳에만 단풍이 절정이다.
누구의 정성일까???
계곡의 바위 위에 제법 공을 들인듯한 돌탑이다.
좌측은 계곡, 우측은 도로
도로변에 의자가 듬성듬성 있어 아무때고 쉬고 싶으면 앉으면 된다.
의자에 앉아 각자 가져온 음식을 먹기도 한다.
나 역시 가져간 피자를 저렇게 앉아 오물거렸다.
매표소
이곳은 소요산 전철역에서 1.5km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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