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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후원 '연경당과 선향재'

송 죽 2013. 1. 15. 19:45

 

연경당(演慶堂)은 양반의 살림집을 본떠 만든 집으로 
집 안에는 사랑채와 안채, 행랑채, 서재 등을 갖추고 있다.   

고종황재 때부터 외국 공사들을 접견하고 
연회를 베푸는 장소로 이용하였다.   

서향으로 지어진 벽돌건물의 선향재(善香齋)는 서재로 사용 되었는데  
햇빛을 가리기 위해 동판 지붕에 
도르래식 햇빛 가리개를 달아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연경당 입구

좌측에 서있는 분이 가이드로 
연경당의 관람 포인트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궁궐의 정원 곳곳에 괴석이 놓여 있던데 
암석은 겉보기에 아무 관심 끌만한 요소가 없어 보이는데 
옛사람들은 그 평범하고도 특별한 경관이 아닌 것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아냈으며 
정원을 조성할 때 원래 바위모습 그대로 정원에 포함시키려 했고 
그럴 상황이 못되면 괴석을 가져다 정원 속에 배치했다 한다.

옛사람들이 암석을 애호한 심리는 
삼라만상 중에서도 가장 불변적이라 것이다. 

 

 

괴석 돌좌대에 새겨진 문양 

 

 

 

 

 

 

 

 

솟을대문인 장락문(長樂門)을 들어서면 
행랑채가 좌우로 방, 광, 헛간 등을 지어 
집안의 제일 아랫사람들이 거쳐하며 
가마, 말 등을 두는 공간도 있고 끝에는 남자들이 사용하는 측간(변소)도 있다.  

 

 

측간(변소) 

 

 

안채로 들어가는 문

연경당은 효명세자가 아버지 순조에게 존호(尊號)를 올리는 의례를 행하기 위해 
1828년(순조 28)경에 창건했고 고종이 1865년쯤에 새로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사대부 살림집을 본떠 왕의 사랑채와 왕비의 안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단청을 하지 않았다.

일반 민가가 99칸으로 규모가 제한된데 비해 연경당은 120여칸이 된다.

 

 

 

 

 

??? 

 

 

노둣돌, 하마석

이 돌은 말이나 가마에서 내릴때 사용하는 디딤돌 
이런집에 살던 양반은 흙을 밟지 않고도 살았다는 이야기 

 

 

사랑채 기둥에 주련(柱聯)과 창살 

 

 

연경당(演慶堂)

 

 

 

 

 

 

 

 

 

 

 

 

 

 

 

 

 

 

 

 

 

 

 

 

 

 

말이나 가마에서 내릴때 사용하는 디딤돌 

 

 

아궁이 

 

 

 

 

 

'정추문'

연경당 안채와 사랑채를 오가는 문

 

 

서재인 선향재(善香齋)

 정면 7칸, 측면 2칸으로 청나라풍 벽돌을 사용하였다.  

 

 


 

 

중앙에 큰 마루를 두고 좌우로 온돌방이 있다. 

 

 

아궁이 

 

 

서쪽에 동판을 씌운 지붕에 도르래식 차양을 설치하여 
석양볕이나 비바람을 피하던 구조로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

 

 

 

 

 

 

 

 

선향재(善香齋) 측벽 

 

 

 

 

 

농수정(濃繡亭)

선향재 뒤로 '농수정'은 마치 매가 날개를 편 것같이 날렵한 모습이다.

 

 

선향재와 농수정 사이엔 계단식 화단을 만들어 
꽃과 나무를 심어놓고 보며 즐겼다. 

 

 

'농수정'

 

 

연경당 외곽의 모습들  

 

 

 

 

 

 기와를 완전히 덥을 만큼 많은 눈이 내려 
우리도 마음대로 걸으며 관람하기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