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직단 정문'
단의 정문은 신이 드나드는 방위로 여겨진 북쪽에 설치된다.
조선초기의 자료에 따르면 사직단 영역 전체의 정문 역시 북쪽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에 태풍으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문을 지금처럼 동쪽으로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1962년 사직단 앞을 가로지르는 사직로를 새로 만들면서
정문은 원래보다 14m 뒤로 물러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사직단의 정문은 문이 세개 나란히 있는 평삼문이며
지붕은 책을 덮어놓은 듯한 모양의 맞배지붕이다.
기둥 위에 지붕을 받치기 위해 사용된 구조의 세부 형식은 정형에서 벗어난 것으로
우리나라 건축양식의 흐름을 살피는 데 중요한 자료다.
사적 제121호.
서울 종로구 사직동.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21호로 지정되었으며 면적 9,075㎡이다.
사직단은 조선시대에 토지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태조는 도읍을 한양(漢陽)으로 옮기면서 고려의 제도를 따라
1395년(태조 4)에 경복궁 동쪽에는 종묘를, 서쪽에는 사직단을 설치아였다.
조선시대에는 사직단을 관리하기 위한 부서인 사직서와 제사를 지내기 위한 부속건물들이 있었으나
1911년 사직단의 제사가 페지된 이후 두 단만 남기고 주변을 공원으로 만들었다.
사직단은 서울뿐 아니라 지방의 주요 도시에도 설치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서울에 있는 사직단의 규모가 가장 크다.
서울과 지방에서 왕과 수령이 사직단에 제사를 올렸는데
이는 농업이 근본이었던 전통사회에서는 토지와 곡식의 신을 중요하게 섬겼기 때문이다.
사직단은 종묘와 함께 왕조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시설이다.
가운데 사각형의 잔듸밭 가운데 '사직단'이 보인다.
정문에서 바라본 사직단
사직단 외각으로 돌담을 쌓아 놓았다.
남쪽 정문으로 들어와 돌담 동쪽문(동,서,남,북 4개의 문이 있음)에서 단을 바라본 모습
가운데 또다시 담장이 있고 저 안에 단이있다.
담장안의 사직단이있는 전경
사직단은 홍살문이 설치된 두 겹의 담장으로 사방이 둘러싸야 있는데
동쪽에는 사단이 서쪽에는 직단이 있다.
두 단의 모양은 하늘은 둥굴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에 따라
한변이 7.65m인 정사각형이고 두 단의 높이는 약 1m로
단의 4면에는 3층의 돌계단을 설치하였다.
안에서 바라본 서울 사직단 정문
도로쪽에서 바라본 '사직단 정문'
여기서 우측으로 가면 광화문이 나오고 좌측으로가면 사직터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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