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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선당(義善堂)

송 죽 2011. 2. 16. 22:00

 

 의선당(義善堂) 전경

인천 개항후 인천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이 늘어남에 따라

교화및 정신적 안녕을 기리는 중국식 사당인 "의선당(義善堂)"이 자장면 거리에 있습니다.

 

 

 

 

 

 

 

 

 

 

 

 

 

 

 

 

 저 안에는 사후 안식을 기원하는 "관음보살" 돈을 벌어준다는 "관우상"

 자식을 점지해 준다는 "삼신할미상" 중국을 왕래할 때 뱃길의 안녕을 보살펴 주는 "용왕상"

그리고 원행이나 산길을 보호해 준다는 "호산할아버지(산신령)"의 다섯분이 모셔져 있는데

 

 

 

 

 

 

 

 

 섬세한 솜씨로 만들어진 토상(土像)은

청나라 말기 양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귀중한 문화재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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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때 어느분이 나타나 사진을 못찍게 하더군요.

사진을 찍어도 될법 한데 이들의 문화가 그런가 보다 하며

더이상 셧터를 못누르고 퇴장 해야했습니다.

 

 

 

 

 

 

 

 

 

 

 

 

 

 

 

 

 

 

 

 

 

 

 밖으로 나와 주변을 돌아보다 지붕을 보니

용두와 잡상이 용마루에는 쌍용이 올려져 있습니다.

 

 

 

 

 

 

의선당(義善堂)은 인천차이나타운에 있는

우리나라에 하나뿐인 중국 절 겸 사당 이라는데 규모는 매우 작아 보였다.

 

 의선당(義善堂)은 개항 이전인 1850년대에 이미 문을 연 사당이다. (인천항 개항 1883년 2월)

하지만 처음에는 화엄사라고 불렀으며

의선당(義善堂)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발족하기는 1893년이라고 한다.

 

원래 이름인 화엄사(華嚴寺)를 의선당(義善堂)으로 바꾼것은

멀리 산동반도의 고향을 떠나 인천으로 온 화교들의 수가 점차 늘어나자

이국 땅에서 잘 적응하며 의를 지키고 착하게 살도록 지내야 한다는 것을 교화하기 위한 기관(機關)이라 한다.

 

하지만 당초에 화엄사를 창건한 목적은 개항후 중국을 오가는 배들의 순항을 기원하며 제사를 올리기 위해서 였다고 하며 

구한말에는 화교들이 소림사 십팔기 무술을 연마하는 장소로 유명하여 절이라는 관념이 더 많았으며

 

해방후 점차 쇠퇴해지고 70년대 화교사회의 위축과 함께 폐쇄되어

80년대 까지 무당파 팔괘장 전수도장으로 운영 되다가

2006년 5월 대대적인 수리후 다시문을 열게 되었으며

  향을 피우고 복을 기원하는 사당의 역할이 더욱 강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