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차이나타운 입구 '제1 패루'
차이나타운의 역사
인천 차이나타운은 현재의 인천 중구 선린동과 북성동 일대에 정착한 화교들이
그들만의 생활문화를 형성한 곳이다.
초기에는 청나라 거상들의 점포와 음식점 및 주택들이 들어서 있었고
청나라 관청이 있는 동네라는 뜻에서 '청관'이라 하였다.
상거래가 활기를 띠면서 중화루, 공화춘과 같은 유명한 중국 요리집들이 개점하는 등 매우 번창하였다.
광복 후 선린동으로 동명을 개정하여 옛날과 같은 친선교류를 유지코자 하였으나
우리 정부가 화교의 경제권 확장을 제한하는 정책을 폄으로써 화교사회는 위축되었다.
1990년대 한중수교를 계기로 이곳은 대중국 교류의 중심지로 성장하였는데
역사적 의의가 깊은 관광명소로서 뿐만 아니라
중국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품격있는 차이나타운으로 탈바꿈하였다.
인천시 중구는 북성동 차이나타운 입구 (인천역 건너편)
중국 웨이하이(威海)시가 기증한 제1패루(牌樓)
※패루(牌樓)는
예전에 중국에서 큰 거리에 길을 가로질러 세우던 시설물이나
무덤, 공원 따위의 어귀에 세우던 문으로
도시의 아름다운 풍경과 경축 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정통대문으로
정교하고 아름다운 건축 장식과 문화예술이 융합된 상징성을 보인다.
인천과 중국간의 우호 증진과 관광객 유치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며
차이나타운의 상징물로 돌을 사용한 높이 11m, 폭 17m 크기의 패루를 세웠고
패루를 지나면 인천차이나타운 거리가 시작된다.
인천역사
경인전철 종착역으로
이곳 역사에서 길 건너편에 제 1페루가 있고 차이나타운이 시작된다.
'공화춘'의 전신은 청국 조계지에 음식점과 호텔의 혼합형 숙식업소로 있던 신동회관으로
1911년 신동성 출신의 화교 우희광이 지금의 위치에 이전 개업하였다가
이듬해 중화민국의 수립을 기념하여 공화춘(共和春)으로 개명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인천과 서울의 상류층들이 이용하는 경인지역 최고습 요리점이었고
6.25전쟁 이후에는 자장면 등 대중적인 음식 보급에 앞장섰다.
화강암 석축 위에 벽돌을 쌓아올린 2층 벽돌조 건물은
화교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근대 문화유산으로
이곳에 '짜장면 박물관'을 만들기 위한 공사가 한참 진행되고 있다.
중국인들이 1925년에 건립해 사용한 주상복합 건축물로
현재 화교인이 중국요리집, 상가, 주거로 사용하고 있다.
연와조의 2층 벽돌조 건축물로 각각의 공간이 연속되어 있고 중국 특유의 원색을 사용해
화려한 색채를 강조했으며 박공형 지붕, 목조청풍 차양, 개방형 발코니가 특징이다.
중국제과점 '담(譚)'
중국음식점 '풍미'와 마주하고 있다.
중국식 호떡 '공갈빵'
'장수천도(壽桃)'
팥, 호두, 잣 등이 들어있어 그런지 조금 비싸다....(4,000원/개)
차이나타운 한복판 정통 중국 음식점에
출입문 부터 메뉴판 까지 '짜장면'이 없다고 간판을 내걸은 집이 있다.
중국 요리점 이지만 이름 꽤나 알려진 만두 전문점으로
늘 손님이 붐비고 준비된 재료가 떨어지면 장사를 끝낸다.
만두 재료 떨어져 짜장면 이라도 시켜 먹으려다 되돌아 나와야 하는 집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우측으로 동사무소 앞마당에
용 조각상과 벤치가 설치되어 잠시 쉬어갈 수 있다.
북성동사무소앞 에서 바라본 차이나 타운 진입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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