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무덤(코무덤)입구에 있는 풍신수길의 신사
바로 이 도리이 맞은편 길건너에 우리 선조들의 통곡과 원한이 서려있는 귀무덤(코무덤)이 있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리품으로 비춰지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전리품으로 취급하는 작태를 중단하고
지금 이라도 귀무덤(코무덤)을 한국에 되돌려 주는 최소한의 양심을 갖기를 바라는 바 입니다.
오사카성에 있는 풍국신사의 후문 도리이
오사카성내 풍국신사에 세워진
임진왜란의 원흉 토요토미 히데요시(豊巨秀吉,풍신수길)의 동상
정치적인 활약
히데요시는 일본 전국 시대의 무장으로 본래 전국 통일을 눈 앞에 둔 오다 노부나가의 부하였는데
항상 신발을 들고 노부나가의 뒤를 따라다녔으며, 노부나가는 이러한 그의 충실함을 보고 신임을 하게 되어 크게 중용하였다.
히데요시는 기지와 용병술에 뛰어나 각 지방을 정벌하여 세력 확장에 공을 세워 오다 노부나가가 죽자
그의 뒤를 이어 권력을 잡고 노부나가의 원수를 갚았다.
히데요시는 천하인(天下人)을 자처했으며, 그의 오사카 성에는 늘 오다 노부나가에게서 물려 받았다는
천하포무(天下布武)라는 네 글자가 새겨진 깃발이 걸려 있었다.
또 자신의 칼에도 천하포무라는 글자를 새겼다고 한다.
그는 1584년에 동부 일본의 큰 세력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굴복시키고,
1590년에는 천황의 권위를 빌려 마지막 남은 여러 영주와 호족을 정복하여,
죽은 노부나가와 자신의 숙업인 통일을 이룩하여 100년 간에 걸친 센고쿠 시대의 혼란을 수습하였다. (배과사전에서 옴김)
임진왜란
이후 그는 대륙 진출에 대한 야망을 꿈꾸며 2년 후 20만 병력으로 조선을 침략해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순신 등을 중심으로 한 조선군의 활약으로 일본군은 점차 퇴각하기 시작했으며
1598년 그가 병으로 후시미 성에서 사망하면서 노량 해전을 마지막으로 7년 간 끌어오던 전쟁은 실패하고
일본군은 총퇴각 하였다.
이 전란을 통해 일본은 전공을 과시하기 위해 조선인들의 귀나 코를 베어가는 등 잔학 행위를 자행 하였다.
또 조선의 귀중한 문화재들을 약탈하고 2-3만 명의 도공들을 납치해
이후 도자기 문화 같은 에도시대의 화려한 문화 발전을 이룩하는 터전으로 삼았다.
그가 사망한 후 일본은 도쿠가와세력과 도요토미 충성 세력간의 전쟁인 세키가하라 전투와
토요토미 지지자들에 대한 숙청작업을 거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도쿠가와 막부가 세워졌다.
이로써 도요토미 정권은 2대째에서 막을 내리게 되었다. (배과사전에서 옴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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