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가지]-----/돌과 조형물 55

인천 삼국지 벽화거리...3

34. 장판교(長坂橋): 유비의 군사는 거의 전멸당했다.  그때 장비가 혼자서 장팔사 모를 꼬아 쥐고 장판교 다리 위에서  "덤빌려면 덤벼라" 하고 호통을 치자 그 소리가 마치  우뢰처럼 울려 조조의 장수들과 십만 대군이 겁을 집어먹고  추격을 중단하고 되돌아갔다. 장비가 홀로 십만 대군을 상대했다는 유명한 이야기 이다.                39. 적벽대전(赤壁大戰) ; 고육계가 성공하여 조조 진영 에서는 황개의 투항을 기다리게 되고 마침 동남풍이 불자 황개는 조조 진영으로 가  배에 불을 질러 수채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이리하여 조조의 수채는 거대한 불기둥에 휩싸이고 불길은 육지에도 번져 조조군은 거의 전멸하다시피 한다. 이른바 주유의 대승으로 기록된 적벽대전이다.

인천 삼국지 벽화거리...2

21. 자주논영웅(煮酒論英雄): 허도의 조조는 유비가 영웅의 그릇임을 알아보고       어느날 자기집 후원으로 청해 술을 마시다가 때마침 용이 승천하는 구름이 일어나자      천하의 영웅에 대해서 설파하며 유비의 속마음을 알고자 한다.   이때 유비는 자신의 속마음을 들켰다고 여겨 수저을 떨어뜨리는데      때마침 번개치는 소리에 놀랐다는 듯이 둘러대 조조의 예리한 눈빛에서 벗어난다.                28. 마약단계(馬躍檀溪): 원소에게 의지했다가 여의치 않게 된 유비는 유표에게 의탁했다.      그런데 유표의 처남이자 형주군 사령관 채모는 유비를 미워하여 죽이려 했다.   유비는 채모의 흉계를 피해 격류로 알려진 단계에 뛰어들어가  겨우 살아날 수 있었다.       이때 유비를 태우..

인천 삼국지 벽화거리...1

중국 4대 기서의 하나인 삼국지(三國志)가 타일로 제작되어 100여m의 벽에 붙어있는 벽화 거리가 있다. 나는 삼국지을 몇번 읽으며 끝까지 읽은 일 없이 중도하차 하곤 했는데  이 거리에는 유비.관우. 장비. 제갈공명의 무용과  지모의 중요 장면이 벽화로 그려져 있고 벽화는 순번과 고사성어에 해설까지 함께있어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어 좋은데 벽화거리 에서만 시간을 보낼 수 없어 사진으로 옮겨왔습니다.   야외에 많은 통행인과 차량까지 왕래하다 보니 사진찍는 일도 쉽지 않더군요.  글씨가 흐린 해설은 밑에 다시 써 넣토록 하겠습니다.    2.도원결의(桃園結義): 황건이 난을 일으키자 조정에서는 의병을 모았다. 이때 탁현(현재의 북경 부근)에 살고 있던 유비는 관우. 장비 와 함께 장비의 별장 뒷뜰 복..

태조 이성계 기마상

의정부 역 길건너 행복로에 광장이 조성되고 입구에 우뚝 서있는  "태조 이성계" 청동 기마상 입니다.조각 : 이민수 휘몰아치는 난세의 바람을 뚫고 용맹하게 싸운 이성계 장군의 기품있고 당당한 모습입니다.  고려말 혼란한 시대에 홍건적, 여진족. 왜구, 원나라등의 침입에 맞서 출전한 전투를 모두 승리로 이끌면서 위기를 극복하고 당시대의 영웅으로 추앙받았던 무인이며 개혁정신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정치가였습니다.

성종 태실, 태실비(成宗胎室, 胎室碑)

위치: 창경궁 양화당(養和堂)의 동북쪽 구릉지 숲속에 있다. 성종 태실은 성종의 태반을 묻어 보관했던 조형물이며 태실비(우측)는 그 사연을 기록한 비석입니다.   거북 모양의 받침돌인 귀부(龜趺) 위에 비신(碑身)을 세우고 이수(螭首)의 머릿돌을 장식하였다. 비신 앞면에는 '성종대왕 태실'이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비를 다시 세우게 된 이력이 새겨져 있다. [출처] 창경궁 성종태실·태실비 [昌慶宮 成宗胎室·胎室碑 ] 네이버 백과사전(태실비 까지 들어갈 수 없어 별도의 촬영을 못하였음)  성종 태실은 4각형의 지대석 위에 석종(石鐘) 모양의 몸체를 올려 놓고 그 위에 팔각형의 지붕둘을 얹었으며상륜부(相輪部)는 보주(寶珠)로 장식되어 있으며 구 주위를 커다란 돌기반 위에 돌기둥과 돌울타리로 빙 둘러 보호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