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가지]-----/사진속 세상

감자

송 죽 2023. 8. 27. 02:17

어제 택배 두상자가 집에 배달됐다. 

꽤 커다란 박스 한개, 그보다 작은 또 하나의 박스...
사돈께서 정성스럽게 농사지은 것을 맛 보라며 보내주신 것이다. 

커다란 박스를 열어보니 자주색 감자와 흰색 감자를 한가득 담았고 맨 위에 신문지로 덮었으나 
뚜껑이 다 안닫혀 조금 벌어진걸 테이프로 마감한 그야말로 고봉으로 담은 상태였다. 
도회지에선 마트에서 적당량 담은걸 사다 먹었지 이렇게 많은 양의 감자를 쟁여두고 먹었던 기억이 없다. 

많은 양의 감자를 보고 있자니 잘 보관하여 남김없이 알뜰하게 먹을 일이 난감하기도 하고 
아주 어릴적 감자먹고 체했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내가 국민학교(초등학교) 3~4학년 때 일이니 어언 60여넌 전이다.
그날은 5일장이 서던 장날 이었는데, 
우리집은 시장에서 조금 떨어져 있으나 장날이면 나무전이 서던 곳이라 
평소엔 나환자와 거지들이 아침에 동냥을 얻으러 다녔지만 
장날이면 시도때도 없이 문을 두드리며 구걸하곤 했다. 

그 시절엔 나환자 들이 유독 많았었고, 나환자들이 사람의 간을 세개 먹으면 병을 고칠 수 있어 
어린이들을 납치해 간을 빼 먹는다는 황당한 풍문이 학생들 사이에서 불문률로 퍼져 있었으며 
우리들은 길에서 그들을 만나면 풍문 때문에 눈도 안 맞추고 외면하며 도망가기 일쑤 였는데 

장날이었던 그날, 어른들이 모두 나가시고 4남매만 집을 보게 되었다. 
내가 4남매 맏이니, 하루종일 집에 있으며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데 
제일 큰 걱정이 나환자들이 오면 어떻게 하나 그 걱정이 제일 컸던것 같다. 

집에는 텃밭에서 캐다 놓은 감자가 커다란 쌀가마니 2~3가마가 있었다. 
점심때가 되서 동생들과 감자를 쪄 먹자고 '의기투합' 하고 
연탄 화덕에 올라갈 가마솥 다음으로 큰 양은솥을 준비하여 

감자를 그 큰 양은솥에 가득 담길 양을 동생들 한테 껍질을 벗기게 하고 
나는 양은솥을 연탄 화덕에 올려 솥 가운데 커다란 사기그릇을 업어놓고 물을 부어 
설탕은 귀 할 때라 당원이나 사카린을 먹던 시절이었다. 
찬장을 찾아보니 하얀색에 동그란 감미료 '당원'이 있어 당원을 솥 물을 넉넉히 넣고 감자를 쪘다. 
(솥에 물의 양이나 당원의 적정 양은 무시한체, 물도 당원도 과하게 넣었던것 같다.) 

이렇게 부산하게 동분서주 하는 사이 나환자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감자가 익기를 한참을 기다리다 대청마루에서 그만 잠이 들었다. 
한참을 자고 일어나 솥뚜껑을 열어보니 물은 흥건 했지만 잘 익은것 같아 
쟁반에 찐감자를 담아 동생들과 맛있게 먹고 있는데 
드디어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대문을 두드리더니 그들 특유의 음률로 동냥을 외치는 소리다. 

동생들에게 조용히 안방 농 뒤에 숨으라고 일러놓고 
대문쪽으로 살금살금 닥아가 문틈 사이로 밖의 동정을 살피는데 
두명이 서서 간간히 몇 번인가 외치더니 인기척이 없어서 인지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밖은 조용해 졌다. 

대문틈 사이로 밖을 살피는거라 넓게는 보이지 않아 안으로 들어 왔지만 
나는 놀란가슴에 방금전 먹은 찐감자가 체했고 
난 그 후로 좋아하던 감자를 처다도 보기 싫어하게 되었다. 
군대 제대한 후 까지도 감자를 싫어 했으니 10 여 년 넘게 안먹다. 

어느날 돈가스를 먹는데 으깬 감자가 접시에 담겨나와 무의식 중에 그 감자를 먹었다. 
어느정도 먹다가 감자 먹은걸 의식했고 그 후로 조금씩 감자를 먹게 되었다. 

지금은 그 체증이 없어 졌는데 많은 감자를 보니 
불연듯 그 옛날 추억이 떠올라 60 여년 만에 글로 써 봤습니다.

 


작은 박스에는 양파 와 육쪽마늘이 한 망씩 들어 있다. 

올해 잦은 비와 극한 더위에 노력의 결실인데 
언뜻봐도 실한 것으로 골라 담으신 사돈의 마음이 보입니다. 
정성껏 보내주신 귀한 농산물이니 
잘 보관하며 허실없이 알뜰하게 먹어야 겠다는 부담감이 느껴집니다. 

사돈께 전화 해 너무 많이보내 셨다며 엄살을 부리니 
습기없고 서늘한 곳에 두고 먹으라며 조언도 아끼지 않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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