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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성동 봉은사 '판전'

송 죽 2019. 4. 11. 23:29

 

판전은 비로자나부처님으 모시고 있으며

1855년 남호 영기 스님과 추사 김정희 선생이 뜻을 모아

판각한 화엄경 소초 81권을 안치하기 위하여 지어진 

정면 5칸 측면 3칸, 익공식 맞배지붕으로 지어진 전각이다.

 

후에 다시 유마경, 한산시, 초발심자경문, 불족인 등을 더 판각하여 

현재 3,438점의 판본을 보관하고 있으며 봉은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특히 판전 편액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마지막 글씨로 유명하다.

 

판전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84호로

판전에 판각된 화엄경 판본은 83호로 각각 지정되어 있다.

 

 

 

 

 

'판전' 편액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83호

시대 : 1856년(철종 7)

 

이 현판은 조선 후기 문인서화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별세하기 3일 전에 썼다고 한다.

 

큰 글자 옆에 세로로 ‘七’(칠십일과병중작)이라는 잔글씨가 덧붙어 있다. 

추사 71세 되던 1856년, 병을 앓는 중에 썼다는 얘기다. 

 

 

 

 

남호 영기(, 1820~1872) 스님은 판전의 화엄경을 판각한 분이다.

 

스님은 거의 평생 동안 경전을 베껴 쓰고 

그것을 판에 새기는 일에 열중했슴을 알 수 있는데,

1855에 봉은사에 와서 간각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화엄경은 80권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경전으로

불교에서는 대승경전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서적이라 하는데,

 

이때 스님이 판각한 것은 정확히 말하면 화엄경 주석서의 일종인

『화엄경수소연의초』()로 

조선시대 이래 화엄경 연구에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던 교재 였다고 한다.


추사 김정희( , 1786~1856)

평생의 지기였던 이재 권돈인( , 1783~1859)에게 

보내는 한 편지의 말미에 스님을 소개하면서 

당시 스님의 모습을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또 한 승려 영기()는 자칭 남호()라는 자로서,연전에 『아미타경』()과 『무량경』()을 판각하여또한 이미 강상()에 전달했던 자이니,아마 생면()은 아닐 듯합니다.두 승려가 대원()을 발하여 발하여『화엄경』()을 간행하려 하고 있으니, 그 뜻이 또한 가상합니다.
이때의 작업은 이듬해 끝이 나서 경판을 봉안하기 위해 새로 지은 집에 안치된다.
그 건물이 바로 이 판전이고현판 글씨는 흔히 추사의 절필작이라고 말하는 그 작품이다.

 

 

 

 

 

비각과 비 그리고 판전

 

 

추사 김정희의 비가 서있다.


 

 

앞면을 제외한 삼면을 가득 채운 비문은 한글로 되어 있었고

1986넨에 세웠다는데 비문이 많이 흐릿해져 있다.

 

 

 

 

 

 

 

 

 

비각

 

 

 

 

'흥선대원위영세불망비'

 

비각 안 비에는 조선말의 흥선대원군 비가 있다.

 

1870년에 세운 것이라고 하는데

비문의 내용은 봉은사의 땅이 남의 농토에 뒤섞여 여러 해 송사에 시달렸는데

흥선대원군 덕택에 해결되어 그 은혜를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

 

 

 

 

있는듯, 없는듯...

마치 굴러다니는 바위가 서있는듯한 비가 눈에 들어와 사진을 찍고 보니

 

'조선불교조계종대본산봉은본?사주특대?'

??(소화) 18년 10월 건립

 

이렇게 글자가 새겨져 있다.

소화 18년이면 서기 1943년 


봉은사에 뭔가를 건립하고 만든 

정초(定礎)같은 기념탑 인듯 한데,

 

돌은 여기저기 깍이고 깊은 상처가 너무 많았고

제법 깊게 새겨진 글자가 

몇글자는 의도적으로 글자를 뭉게어 놓은듯 식별이 어렵다.

파손되어 읽지 못한 글자는 ? 로 쓴거다.

 

 

 

 

 

 

 

 

 

'범종각'과 '판전'

 

 

 

 

'다래현'

이곳은 스님들의 수행공간 이라고 문이 굳게 닫혀있다.

 

법정스님의 저서 '무소유'에 나오는 

다래헌 이야기가 바로 이곳을 말한다고...

 

 

 

 

담장 넘어로 잠시 들여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