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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피렌체) 단테와 미켈란젤로의 생가

송 죽 2012. 2. 27. 17:14

 

단테(1265~1321)는 
이탈리아 최대의 시인 장편서사시 '신곡'으로 유명하지요. 

그가 살았던 생가는 박물관으로 꾸며 놓고 집 외벽면에 
단테의 흉상을 붙여 놓았습니다. 

 

 

1265년 피렌체의 도시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그는 젋은 나이인 1288년 카프로나 근교의 전투에 참여하여 싸웠으며

1292년 자신의 책 '새로운 삶' 에서 
아름다운 베아트리체에 대한 청년기의 사랑을 노래합니다. 
그녀에 대한 사랑의 감정은 그의 시 형성과정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답니다. 
그가 1283년에 만난 그녀는 1290년에 한 은행가의 아내가 되었으나 
꽃다운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자 단테는 엄청난 충격에 빠져 
피렌체의 하늘이 1주일 넘게 노랗게 보였다고 절망적 심정을 토로했다네요. 

 

 

당시 피렌체를 지배하고 있던 정파의 일원이었던 단테는 
여러 공직에 등용되었으며 
1300년에는 두달 동안 피렌체 공화국의 수상직을 맡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1302년 반대 당에서 집권을 하게되자 
단테는 피렌체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지요.  

 

 

고향으로 갈 수 없게 된 그는 
1304년 베로나에 체류하며 방랑생활이 시작됩니다. 

 

 

귀향에 대한 희망을 버린 단테는 '희곡'의 창작에 전념했는데 
1304년~1308년 '지옥편' 1308년~1313년 '연옥편' 
마지막 7년 동안에 완성한 '천국편'으로 17년동안 집필한 거작이지요. 
이 작품은 후에 '신곡'이라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 

 

 

신곡은 인간의 속세와 영원한 운명을 심오한 그리스도교적 시각으로 그리고 있으며 
주목할만한 것은 라틴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로 써내려가 
서민들이 이탈리아어로도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케 되며 
이탈리아의 표준어가 되지요. 

위대한 작가 '단테'는 1321년 56세의 일기로 
라벤나에서 죽게 되며 그곳에 묻히게 되었답니다. 

 

 

흉상밑 보도불럭엔 또다른 단테의 형상을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 석공이 만들어 놓은것이랍니다. 

 

 

평소엔 물을 뿌리고 본다는데 
마침 비가오는 날씨덕에 자연스럽게 볼 수 있었지요. 

 

 

단테 생가에서 조금 이동하면 골목 사이로 빼꼼이 보이는 '피렌체 대성당' 

 

 

 

두오모 대성당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시뇨리아 광장 가는 좁은 골목안에 단테의 생가가 있지요, 

 

 

르네상스 3대거장 '미켈란젤로'(1475~1564)의 생가 외벽입니다. 
'산타 크로체 광장' 에서 '단테' 생가가는 골목길에 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생가엔 저 위에 액자 하나 달랑 붙어있고 
'단테'의 생가에 비해 찾는이도 없어 그냥 지나치기 십상입니다.  

 

 

좁고 어두운 골목길 
우측벽이 미켈란젤로의 생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