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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시티) 성 베드로 광장 풍경...1

송 죽 2012. 1. 9. 23:22

 

광장에서 본 '산 피에트로 대성당' 전경

 

 

 

성당에서 밖으로 나오니 강열한 햇살에 눈이 부십니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성당으로

 한참을 뒷걸음 치고 찍었던 '밀라노 두오모' 보다 크다더

뒷걸음을 쳐보지만 역시 카메라에 담기질 않는군요.

 

 

 

'성 베드로 광장'

 '베르니니'의 설계로 1656년부터 1667년까지 11년간 만든 광장입니다.

 

 

 

 

돔(쿠폴라)에서 바라본 '성 베드로광장' 전경

 

성 베드로광장은 예수가 베드로에게 준 천국의 열쇠를 본 딴 보습으로 만들어진 광장으로 

성 베드로성전 동쪽에 베르니니의 디자인으로 1656년~1667년까지 11년간 만들어졌습니다.

 

광장을 둘러싼 반원형의 대회랑에는 16m 높이의 도리아식 대리석 원기둥 284개가 양편으로 늘어서 있고

그 위에는 140인의 성인과 교황이 대리석으로 조각되어 장식돼 있다.

 

광장 중앙에 서기 40년 이집트에서 가져온 높이 25.5m의 오벨리스크가 세워져있다.

 

좌우에 분수가 있고 좌측 사도 궁전 건물에는 교황의 집무실이 있고 외국의 사절도 맞으며

창문이 열림과 닫침으로 계실때와 부재를 알 수 있으며

계실때는 일정한 시간에 창문으로 손을 흔들어 축복을 주시기도 한답니다.

 

 

 

바티칸 시국 뒷뜰(정원) 

멀리 방송국이 보입니다.

 

 

 

 

 

 

 

대성당옆 출입구의 위병

 

교황의 경호를 하는 이들은 모두 스위스 국적의 용병으로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한 화려한 복장을 입고 근무를 합니다.

 

 

 

예전 알프스는 농사지을 땅도 자원도 없는 험준한 산악지대에 불과했지요.

산악에서 다져진 뚝심과 기개 하나로

유럽 각국의 용병이 되어 가족을 먹여 살리곤 했는데

 

 

 

15세기 식스투스 4세(1471~1484)가 스위스와 동맹관계를 맺은데서

율리우스 2세(1443~1513)는 1506년 1월 22일 스위스 의회에 용병 파견을 공식 요청

150인으로 구성된 스위스 용병가 창단되어 지금까지 역활을 수행하고 있지요.

 

 

 

'교황 클레멘트 7세'때인 1527년 '싸코 디 로마(로마의 약탈)' 무렵

교황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때 

바티칸을 지키는 스위스 근위대는 189명 이었는데

 이중 147명이 성 베드로 대성당 계단에서 장열히 전사하고

 살아남은 42명의 스위스 근위대 만이 교황을 끝까지 엄호하여

바티칸과 산탄젤로 성을 연결하는 800m의 비밀통로를 통해 교황을 피신 시키는데 성공

 

 

 

그후로 교황의 경호는 스위스 국적의 카톨릭 신자들에게만 근위대 용병 자격을 부여하며

매년 5월 6일 신성로마제국의 군대가 로마로 쳐들어 왔던 그날이면

스위스 호위병은 바티칸의 산다마소 안뜰에서 당시의 용맹을 기리며

교황에게 새로이 충성을 맹세하는 선서식을 거행 한답니다.

 

 

 

 

 

 

 

대성전 좌측에 있는 '성 베드로'의 조각상

오른손에 열쇠를 들고 있습니다. 

 

 

 

성당위 에는 가운데 십자가를 들고 있는 예수님을 비롯한

열두제자의 조각상이 서있습니다.

 

 

 

정면 좌,우측에 시계와 밑에 종

 

 

 

정면 발코니와 5개의 출입문

 

 

 

천국의 열쇠를 본딴 광장을 둘러싼 반원형의 회랑에는

높이 16m의 거대한 도리아식 원기둥 284개가 늘어서 있고

그 위에는 140인의 성인과 교황의 모습들이 3.24m의 거대한 대리석으로 조각되어 있지요.

하지만 광장과 대성당의 웅장한 규모 때문에 조각상은 조그만 모습으로 보입니다.

 

 

 

묵묵히 관람객 사이를 걸어가는 수녀님

복장이 하복인지? 

 

 

 

광장의 폭은 246m, 광장 입구에서 성당 입구까지 길이가 300m로

30만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평소에도 관광객과 순례자로 이렇게 붐비는데

중요한 행사가 열릴때면 광장이 꽉차고 넘쳐난답니다.

 

 

 

좌측 : 회랑 ,  우측 : 대성전

 

 

 

'오른쪽 분수대'

대성전 정면을 설계한 '카를로 마데르노'의 작품

 

광장의 아름다운 조화와 균형을 위해

오벨리스크을 중심으로 양쪽에 한개씩 두개의 화려한 분수대를 건축했다고 합니다.

 

 

 

종교적 의미로는 성전에 들어가기 전에

물로써 죄를 깨끗이 씻어야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며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순례왔던 사람들은 모두 분수대의 물을 손으로 떠서

 머리 위에 뿌린 후 성전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프랑스 콩코드 광장 오벨리스크 양쪽에 같은 모양의 분수대 두개가 있는데

바로 이 분수대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것 이랍니다.

http://blog.daum.net/sc2248/17947827)

 

 

 

'시스토 4세' 가 건립한 '시스티나 성당'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과 '천지창조'의 천장화가 있던 바로 그 성당으로

 

전세계의 추기경이 모여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와

추기경 회의 등 교황청의 중요한 회의가 이루어지는곳

 

 

 

가로등도 멋지게 서있고 가로등 뒤로 '사도 바울'의 조각상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