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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중화전(中和殿)

송 죽 2010. 3. 8. 16:40

  

 

"중화전"

 

덕수궁의 중심 건물로 임금님이 하례(賀禮)를 받거나

국가 행사를 거행 하던곳

 

 

 

 

정전의 앞 마당을 조정(朝廷)이라 하는데

중화전 앞도 조정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조정은 화강석을 깔아 길을 만들었고

이 돌을 박석이라 합니다.

 

박석 가운데 부분이 좀 높은것을 볼 수 있는데

(검은 복장의 여인이 걷고 있는길) 

이 부분이 임금님만이 지날 수 있는 어도(御道) 입니다.

 

 

 

월대를 오르는 계단을 보면 세개로 나뉘어 있는데

가운데 계단이 답도(踏道)가 있는 어도(御道)이고 임금님이 이용하며 

좌측 (서쪽)에는 무신들이 이용하고, 우측 (동쪽)에는 문신들이 사용하던 길입니다.

 

어도: 임금이 통행하는 도로 

어계: 왕이 통행하는 계단

답도: 어계 중앙에 있는 국왕의 가마가 지나는 계단의 바닥 장식돌로

        왕을 상징하는 두마리의 봉황새가 조각된 사각돌

소맷돌: 돌계단의 난간

소맷돌 서수: 소맷돌 머리장식하는 동물조각

박석: 얇고 넓적하게 뜬 돌로, 벽돌의 역할을 함.

 

 

 

 

 

 

  

 

 

 

 

 

 

 

 

 

 

 

 

 

 

 

 

 

 

 

 큰 향로같이 생긴 이것은 정(鼎)이라 불리는데

나라와 백성의 안녕을 상징하는 솥으로

기원은 중국에서 유래 된것이라 합니다.

 

  

 

 

 덕수궁은 원래 세조의 큰손자 월산대군(月山大君)의 저택이었으나

임진왜란 때인 1593년 10월 다른 궁궐들이 화재로 소실되어

 

의주의 피난길에서 돌아온 선조가 행궁으로 삼아 머물게 되면서

궁의 모습을 갖추어 나갔답니다.

 

 

 

 

 덕수궁의 정전

 

중화문과 함께 보물 제819호로 지정되어 있다.

본격적인 궁궐 중건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즉조당을 정전으로 사용 했으나

1902년 중화전이 세워지면서 정전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1904년 화재로 소실되었는데

1905년 중건되면서 원래 2층이던 것이 1층이 되었다.

앞면 5칸, 옆면 4칸의 단층 팔작지붕이며 높은 2층 월대 위에 세워졌다.  ( 다음 백과사전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