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3

창경궁에 살구가 익을때

본래 창경궁 터에는 1418년에 세운 수강궁이 있었다.수강궁은 세종 때 상왕(上王) 태종을 위해 창덕궁 동편에 창건한 궁이었다.1483년에 성종이 3명의 대비를 위해 이 터에 크게 궁궐을 다시 짓고 창경궁이라 불렀다.창경궁은 창덕궁과 사실상 하나의 궁궐을 이루어이 둘을 합쳐서 동궐(東闕)이라 하고, 후원의 정원도 공동으로 이용했다.창경궁은 창덕궁의 부족한 생활공간을 보충하여 왕과 왕비뿐 아니라후궁, 공주, 궁인의 처소로도 사용했다. 경복궁처럼 일정한 원칙을 좇아 경영된 궁궐과 달리,  창경궁은 건축 형식과 제도 면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세워지고 이용된 궁궐이었다. 궁궐은 남향이 원칙이지만, 장경궁의 중심 부분은 특이하게 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동쪽에 왕실 동산인 함춘원(含春苑)과 낙산이 자리를 잡고 있..

창경궁(昌慶宮)

사적 제 123호인 '창경궁(昌慶宮)'의 처음 이름은 수강궁(壽康宮)이었다. 1418년 세종대왕이 왕위에 오른 후 살아계신 상왕(上王)인 태종을 모시기 위하여 수강궁을 지은것이다.   그후 세조(世祖), 덕종(德宗), 예종(睿宗) 세분의 비(妃)를 모시기 위하여 성종(成宗) 15년(1484) 명정전(明政殿), 문정전(文政殿), 통명전(通明殿) 등을 지어 궁궐의 규모를 넓히고 창경궁(昌慶宮)이라 이름을 고쳤다.   선조(宣祖)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타 버렸던 것을 광해군(光海君) 8년(1616)에 다시 지었다. 정전(正殿)인 명정전(明政殿)은 중건된 이래 원형대로 보존되어조선 왕궁의 정전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 국보 제 226호로 지정되어 있다.  일제는 순종(純宗) 융희(隆熙) 3년(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