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창경궁 양화당(養和堂)의 동북쪽 구릉지 숲속에 있다.
성종 태실은 성종의 태반을 묻어 보관했던 조형물이며
태실비(우측)는 그 사연을 기록한 비석입니다.
거북 모양의 받침돌인 귀부(龜趺) 위에 비신(碑身)을 세우고
이수(螭首)의 머릿돌을 장식하였다.
비신 앞면에는 '성종대왕 태실'이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비를 다시 세우게 된 이력이 새겨져 있다.
[출처] 창경궁 성종태실·태실비 [昌慶宮 成宗胎室·胎室碑 ] | 네이버 백과사전
(태실비 까지 들어갈 수 없어 별도의 촬영을 못하였음)
성종 태실은 4각형의 지대석 위에 석종(石鐘) 모양의 몸체를 올려 놓고
그 위에 팔각형의 지붕둘을 얹었으며 상륜부(相輪部)는 보주(寶珠)로 장식되어 있으며
구 주위를 커다란 돌기반 위에 돌기둥과 돌울타리로 빙 둘러 보호하고있습니다.
성종은 1457년(세조 3) 덕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예종의 뒤를 이어 1469년 13세의 어린 나이로 조선 제 9대왕으로 즉위 하였고
그뒤 25년동안 왕위에 있으며 '경국대전'의 반포등
조선의 문물 제도를 완비 하는데 힘을 기울였으며
학문을 좋아하였고 사예(射藝)와 서화(書畵)에도 능하였다.
능은 선릉(宣陵)이다.
태실은 삼국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풍습으로
왕실에 왕자, 공주가 태어나면 그 태반을 향기로운 물에 100번을 씻는 세태의식을 거쳐
말린 다음 한지로 싸서 엽전과 함께 귀 4개 달린 백자 태항아리에 넣어 두었다고 합니다.
1928년 일제가 전국의 풍수 좋은 명당에 흩어져 있던 조선 역대 임금의 태실 22기를 비롯한
왕실 가족의 태실 54기를 대부분 서삼릉(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으로 옮겼다.
이 과정에서 원래 경기도 광주군 경안면 태전리에 있었던 성종 채실이
가장 형태가 온전하여 연구용으로 창경궁 후원에 옮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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